정순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과 후회스러운 과거의 한 지점을 지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인간은 어떠할까? 이런 상상이 날개를 펼쳐 영화나 소설이 되기도 하고, 흥미로운 동화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정설아의 동화 '황금 깃털'은 시간 이동의 판타지를 통해 어린이들이 겪는 삶의 갈등을 어른들의 세계까지 확장 시키는 의미 있는 이야기이다.
정설아는 EBS 방송작가로 활동하다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동화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하는 용기, 미운 사람을 해하지 않을 용기, 시간을 견딜 줄 아는 용기를 어린 친구들과 나누고자 쓴 작품 '황금 깃털'이 제8회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을 만났다. 그동안 '나 오늘 일기 뭐 써?' '폭탄 머리 내 짝꿍' '생각이 커지는 철학동화' 등도 발표했다.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는 동화의 첫 문장과 "잿빛 구름은 보이지 않았다"는 맨 마지막 문장까지 시간의 섬이라는 판타지 공간과 현실을 오가는 구성 덕분에 이야기 속으로 쑥 빠져든다.
주인공 해미는 경아를 괴롭히는 지수와 친해지기 위해 지수와 한편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같이 헐뜯으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그 친구를 해함으로써 지수와 우정이 깊어진다. 부모에게 착한 딸로, 지수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한 일이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자 해미는 일기장을 통해 시간의 섬에 간다. 그곳에서 과거를 고칠 수 있다는 황금 깃털을 가지고 부끄러운 지난 일들을 지운다.
"다시 가탈의 성을 찾았다. 가탈은 웃으며 해미를 반겼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다시 사는 거, 꽤 편하지?' 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로 돌아가니 싫었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미리 짐작할 수도 있어 좋았다." -p150

가탈의 얘기대로 하자 해미는 모든 게 완벽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건 잠시 뿐, 새롭게 시작한 일들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들며 더 복잡하게 꼬여든다. 그러자 해미는 과거로, 더 과거로 가서 문제되는 일을 지우는 데만 급급해한다. 시간의 섬에서 해미를 이끌어준 보짱은 가탈의 말처럼 과거를 지우는 것이 시간을 갖는 것도, 과거를 고치는 것도 아니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해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해미를 가장 진실하게 대해주었던 할머니를 통해 후회스런 과거를 지운다고 해서 삶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둠이 무섭다고 자꾸만 불을 껐다 켜면 어떻게 될까? 불을 끄는 순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겁을 먹게 되지. 하지만 어둠을 견디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서 눈앞의 것이 서서히 보이게 되잖니? 시간도 마찬가지야. 당장 눈앞에 놓인 어려움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두렵고 무서워도 조금만 견디다보면 모든 것이 보이게 되어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낼 수 있게 되는 거란다." -p203
과거를 지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독자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황금 깃털을 가지고 있다. 현재가 즐겁지 않아서 과거를 고치고 싶은 유혹이 있을 때 황금 깃털을 꺼내 과거를 지우고 새로 살지, 지나온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그 자리를 견뎌낼지, 그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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