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5·18망언, 관점의 문제인가

입력 2019-02-24 14:47:12 수정 2019-02-24 19:18:4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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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하는 것

2·28 민주운동 폄훼와 다르지 않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유산

숭고한 희생정신 모독하지 말아야

20대는 "설마요?" 할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나가던 사람의 가방을 함부로 뒤졌다고 하면 말이다. 30대도 "정말요?" 하며 되물을 것 같다. 폭동 진압용 장비로 무장한 전투경찰들이 교문을 가로막고 등교하는 학생을 검문했다고 하면 말이다.

이상한 시절이었다. 머리에 염색을 해서도 안 되었고 옷을 너무 특이하게 입어도 안 되었으며 노래도 정부의 허락을 받은 것만 듣거나 불러야 했다. 책은 특히 위험했다. 소위 불온서적을 사거나 읽다가 적발당하면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학습' 또는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 등의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땐 그랬다. 모든 건 정부의 방침에 맞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머릿속 생각까지 정부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체포될 수 있었고 그럴 가능성만 보여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엔 학생회가 없었다. 대신 학도호국단이 있었고 임원을 맡은 학생들은 연대장, 중대장으로 불렸다. 열일곱 나이에 군사훈련을 받았고 총기를 얼마나 빨리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지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가끔씩 운동장엔 북한을 지배하는 반인반수의 괴물을 불태우는 화형식도 있었다. 모두 30여 년 전쯤의 이야기다.

지금의 청년 또는 그보다 더 어린 세대에겐 쉽사리 와 닿지 않을 낯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낯선 이야기는 내게도 있었다. 예전, 어른들이 주고받던 한국전쟁 이야기가 딴 세상 먼 옛날의 일처럼 들렸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 게 1953년이었으니 따져보면 그 또한 이상했던 그 시절에서 30년 전쯤이었다.

아무튼 그때의 나든, 지금의 청년이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위 세대의 이야기가 실감 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한국전쟁 때 쇠솥을 등에 지고 피란 갔던 이야기도,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이상한 시절의 이야기도 당사자에겐 모두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함께하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것도 대구·경북을 주요 근거지로 삼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향한 망언이 쏟아졌다. 당사자들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그들의 가족과 친구를 북한군으로 둔갑시키고 그들을 괴물이라 불렀다. 이를 두고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은 역사적 사건은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에겐 5·18이 그저 지나간 역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겐, 세상 전부인 어버이를 잃은 아이에겐 살아있는 동안 계속될 지금 당장의 아픔이다. 또한 그날 친구를 잃은 청년에겐 반란군의 총칼에 스러져 간 잊히지 않는 눈빛이며 지금도 끝없이 들려오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인류의 유산이다. 30여 년 전, 그 이상했던 시절에도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적의 침략에 맞서 싸운 사람을 욕보이는 패악은 없었다. 이런 건 우리답지도 않고 인간답지도 않은 일이다.

때마침 대구에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구 사람들이 이렇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남의 가슴에 대못 박는 비인간적인 짓은 용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광주시장에게 보낸 권영진 대구시장의 사과문도 그렇다. 대구와 광주의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까지 답답한 마음을 적시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대구의 228 민주운동을 폄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날, 2·28 민주운동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디게 왔을 것이다. 그날, 광주의 시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상했던 그 시절을 훨씬 더 오랫동안 견뎌야 했을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한 북한군 개입설 등 5·18 민주화운동을 향해 내뱉는 망언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숭고한 희생을 모독하고 저주를 퍼붓는 무도한 패역(悖逆)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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