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노익장(老益壯)

입력 2019-02-2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평생 책이나 들여다보고 낚시질만 하다가 아내까지 가출한 강태공이 주(周)나라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된 것은 칠십이 넘어서였다. 중국 역사상 노익장의 원조 격이다. '노익장'(老益壯)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는 후한(後漢) 광무제 때 대장군 마원(馬援)의 얘기에서 비롯되었다. 마원은 원래 죄수를 압송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한번은 불쌍한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고 북방으로 달아났다.

후일 광무제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마원은 62세에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 진압과 흉노 토벌로 큰 공을 세웠다. 그가 평소에 한 말이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窮當益堅 老當益壯)'는 것이었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백전노장 염파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나라 장군 황충 또한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노익장으로 꼽힌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고구려 제20대 장수왕도 위대한 노익장이다. 80년에 이르는 재위 기간 동안 한반도 안의 주권국가로서는 최대 판도의 강역(疆域)을 이루고 98세에 눈을 감았다.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패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노익장의 칭호가 결코 부끄럽지 않다. 오사카성을 함락시키고 도요토미 집안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에도막부를 열었을 때는 칠십이 넘었다.

서양 역사의 노익장으로는 60대의 늦은 나이에 베네치아의 도제(최고 지도자)가 된 엔리코 단돌로를 꼽기도 한다.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인물로 평가되는 그는 80이 넘은 나이에 십자군을 이끌고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최근 미국에서는 여성 노익장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66세의 베테랑 PD인 수잔 지린스키가 주요 방송국인 CBS의 새 회장에 취임한다. 78세의 여성인 낸시 펠로시 의원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선 하원의장에 선출됐고, 71세의 여배우 글렌 클로즈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차지했다. 생선가게와 순댓국집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김칠두라는 63세의 남성이 시니어 모델로 데뷔하며 40년 전 청년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을 보며,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을 더욱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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