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해부 또는 해부학을 통해 사람의 인체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 시신에 대한 예의를 최우선
지은이 허한전은 타이완 츠지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그는 해부학 수업과정을 통해 해부학 지식과 자신의 몸을 기증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가족들의 심정, 그리고 신체 기증과 해부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가끔 시신을 함부로 대하거나 처리해 논란이 되는 뉴스가 나오는데, 타이완 츠지 대학교는 시신 기증 절차와 보관, 해부, 봉합, 화장까지 절차가 대단히 엄격하다고 한다. 시신을 실습도구가 아니라 '스승'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츠지 대학에서는 해부할 때 '시신스승'의 몸에서 피부와 근육을 떼어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피부와 근육을 떼어놓을 경우 원래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원상태로 돌려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처럼 예의를 다하는 덕분에 1995년 이래 츠지 대학교 의과대학의 '시신기증동의서'에 서명한 사람은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 아킬레스건은 정말 약할까
이 책은 열 번의 해부학 수업으로 구성돼 있다. ▷육안 해부학 ▷손 해부 ▷가슴안 해부 ▷위 및 장 해부 ▷간·쓸개·췌장·지라·콩팥 해부 ▷생식기관 해부 ▷다리 및 발 해부 ▷안면 해부 ▷뇌 해부 ▷봉합 순서다.
각 부위 해부를 통해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의 오류도 지적한다. 한 예가 아킬레스건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나 조직의 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가 지녔던 유일한 약점이 이 부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아킬레스 근육이 손상을 입으면 걷거나 달리는 데 많은 지장이 있고, 완전히 끊어지면 일어서지도 못한다. 하지만 해부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킬레스건은 약하지 않다. 이 힘줄은 길이가 15센티미터, 너비가 4, 5센티미터, 두께가 0.5센티미터로 인체에서 가장 큰 힘줄이다. 해부수업에 이 힘줄을 자르는 과정이 있는데, 일부러 자르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큰 충격을 받으면 파열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 엉덩이 살이 많다고 함부로 찔러?
'미용 & 스파' 광고 전단지에 '독소 배출로 피부 디톡스Detox' 혹은 '예뻐지는 림프 마사지'와 같은 홍보 문구를 볼 수 있다. 특수 마사지나 물리요법으로 림프의 독소 배출을 돕는다는 설명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지은이는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림프액은 조직액으로 마지막에는 정맥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마사지로 림프가 독소를 배출하게 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근육주사는 엉덩이에 놓는다. 엉덩이에 살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살이 많다고 아무데나 주사를 놓으면 안 된다. 주사 놓는 위치를 잘못 찾아 너무 안쪽이나 너무 아래쪽에 놓으면 궁둥신경을 찌를 수 있다. 가장 안전한 곳은 엉덩이 바깥쪽의 윗부분이다'고 설명한다.
◇ 삽화가 없는 해부학 책
해부학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는 삽화가 없다. 아마도 지은이는 인체 그 자체보다는 해부학을 통해 각 장기에 대한 이야기와 해부에 임하는 의과대학생들의 이야기, 인체를 기증한 사람들의 사연에 집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에는 인체를 기증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 간이식이 필요한 아버지에게 네 아들이 모두 간을 주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제비뽑기를 해야 했던 사연, 늘 함께 하자는 의미의 결혼반지를 약지에 끼는 해부학적 근거가 될 만한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요즘은 웬만한 부위는 절개수술보다는 침습 수술방법을 쓴다. 서너 군데 작은 절개창을 내 수술하므로 통증도 적고 수술후 회복도 빠르다. 그러나 그만큼 더 손놀림이 세심하고 신속해야 한다.
외과의대생들은 수술실습을 하기에 앞서 오랜 시간 형광 스크린을 주시하며, 집게를 조작해 특정색깔 BB탄 집어 올리기, 집게로 포도 껍질 벗기기, 해면 커팅하기, 자르기기와 걷어잡기 등 다양한 연습항목을 거친다.
◇ 의대생들에게 전하는 지은이의 당부
츠지 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외과 지원자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외과의사의 길은 고생스럽고 의료분쟁도 많이 일어나 기피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의사가 가져야 할 바른 태도를 가르쳤기에 학생들이 위험과 수고를 감당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지은이는 "과학은 인성을 떠나면 방자하고 냉혹해진다. 의대를 선택한 아이들은 생명을 구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여 인재들을 키우고, 그 인재들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해주기를 바라는, 저 인정 있고 마음씨 착한 분들(시신스승)의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264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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