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부근에서 만난 김병준(64)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눈 주변은 물론, 입 주위에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내 소속 일부 의원들이 일으킨 이른바 '5·18 망언 사태'로 인해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 듯 보였다.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실려 있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에는 더 강한 톤을 불어넣어 웅변을 했다.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당 대표를 뽑는 자유한국당은 당 대표 선출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끝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당을 대표하던 위치에서 물러난다.
처음 그가 비대위원장에 들어간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정치 안 해본 저 사람이 제대로 할까?" "도중에 낙마하지 않겠어?"라는 여러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임무 완수'를 했고 기울어진 운동장 정국 속에서 지방선거 참패로 만신창이가 됐던 한국당의 지지율을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낳았다.
정말 한국당을 떠나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기자는 그의 소회를 들어봤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까지 던져보니 그는 정치를 계속할 것이 확실시됐다. 그렇다면 이 인터뷰는 '잠시 자리를 비우는 김병준 위원장'이라는 제목이 낫겠다 싶었다.
그는 대학 교수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거친 뒤 박근혜 정부 말기에 총리 지명을 받았고,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까지 지냈다. 화려한 그의 경력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찍힐지, 인터뷰를 끝낸 기자의 머릿속엔 '정치인 김병준'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해졌다.
-대학교수 출신이니 점수 얘기를 해보자. 이제 임무를 마무리하는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에게 스스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몇점쯤 줄 것인가?
▶글쎄, (그는 잠시 생각을 했다) 75점 주겠다. 하고자 한것 중에 다 못한것도 있고, 해낸 부분도 있고, 그렇다. 내 마음에 크게 흡족하지 않다. 그래서 70점대의 점수를 준다. 그렇다고 영 못했다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각론으로 들어가보자. 잘한 것은 무엇이고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제일 잘 한것부터 얘기하면 우리 당 사람들이 이 부분을 무시하고 가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의 철학과 비전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경제 부분에서 아이(i) 노믹스<국민 개인(I)이 자유와 자율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생각(Idea)으로 창조(Invention)와 혁신(Innovation)을 주도하는(Initiative) 경제>를 내놨다. 정치는 실현 가능한 꿈을 파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당이 팔 꿈이 있는가? 꿈이 없으니까 남의 말꼬리를 잡고 시비거리를 잡으면서 싸운다. 국가는 변하는데 정치는 그 자리에만 머물고 있으니까 국민이 냉소한다.
(자유한국당은) 그런 것이 불명확했던 정당이었다. 비대위 체제 아래 새로운 경제철학, 자유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고 국가는 이에 대해 보완적 역할을 하는 그러한 경제 비전과 철학을 내놨고 (이것을)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해준 게 가장 잘 한 것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들은 인적청산이 어떻고, 오디션이 어떻다고 하지만 나는 비전과 철학을 한국당에 심어준 부분이 가장 잘한 역할이라고 본다.
또 하나, 전통적인 여의도 문법은 자꾸 눈에 보이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안 보이게 하려고 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했던 영향인 것 같다. 정책실장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조정해야 하는 자리다.
비대위원장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조언했다. 앞에서 보여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있는둥 없는둥 안 보이게 처리하려고 했다. 당 원로들이 "전대 일정 문제에 있어서 왜 비대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냐"고 하시길래 (내가 보이지 않게 해결한) 여러 이야기를 전하니 많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아쉬운 부분? 당의 철학과 비전을 만들었으면 잘 공유되고 단단한 철학·비전이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못 간것이 아쉽다. 아이노믹스, 그리고 평화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당원들에게 (흡수돼 공유되지 못하고) 떨어져 존재하는 현상이 빚어진게 많이 아쉽다.
-한국당 비대위원장 해보니 한국당이 밖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다르던가? 당에 들어와서 보니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어떤 것이었나?
▶당내에 장점과 단점이 많은데 장점은 좋은 인재가 많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사무처 직원들 중에도 인재가 많다. 그런데 (좋은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 못했다. 맨날 계파싸움이나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싸움하는 사람만 앞에 나서고 실력 있는 사람이 뒤에 있는 모습이 많았다. 이 부분은 장점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고 희망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의원들의 단단한 철학이 부족했다. 당이 그런 것을 안 갖췄으니까 약했던 것이다.
- 친박·비박에다, 요즘은 배박도 나오는데 한국당 내 계파 문제, 어떻게 생각하나?
▶친박, 친이, 비박 등 여러 말이 많이 나왔지만 나는 복당파와 이른바 잔류파의 벽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싸움을 완화하고 계파논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 이제는 제법 많이 상황이 바뀌었다. KBS가 (내가 비대위원장 들어온 뒤) 100일 지나고 의원들한테 물으니 평균 71점을 줬더라. 0점 준 사람도 있고 어쨋든 평균은 71점이었다.
중요한 것은 친박과 비박에서 똑같은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내가 계파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지금도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시장이 전당대회에 나오니까 하기 좋은 말로 황 전 총리는 친박·오 전 시장은 비박으로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황 전 총리를 비판하는 사람 상당수가 친박이다. 오 전 시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복당파와 비박이 많다. 지지층도 섞여 있다.
과거 구도로는 이번 당 대표 선거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기 논란이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계파에 따라 의견이 갈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도부 입장에 따라줬다. 지난번 원내대표 경선도 계파로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나경원 의원이 당선됐다. 나 원내대표는 독자 세력을 가진 의원이 아닌데 (원내대표가) 됐다. 당내 구성원들 가운데 계파정치 반대 세력이 늘어나고 있다.
- 최근 유영하 변호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경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부분은 어떻게 봐야할까?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을까?
▶정확한 의도는 내가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든 간접적으로 당 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당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지금은 그 길이 막혀있다. 하지만 여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황교안 전 총리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된다면 '도로 친박당'이 된다는 비판이 있는데?
▶황 전 총리를 친박이 다 지지하지는 않는다. 친박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오히려 반대하고 있다. 친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당 안에서 계파색이 옅어져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다. 황 전 총리가 진짜 친박이 맞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있다. 옛날 패러다임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양상이다.
-전당대회 출마가 예상됐었는데 왜 나가지 않았나? 그리고 새 대표가 나와도 당을 안정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전대 출마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일부 의원들이 "기존 후보들이 가진 문제점이 있으니 비대위원장이 출마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런데 현 지도부가 출마하는 것이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당을 관리하고 자리를 놓아야지, 비대위원장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안한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이 일희일비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에 뭘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할 일도 있다.
(새 대표가 나오면) 허니문 기간이 있을 것이다. 국정상황이나 당내상황으로 봐서 흔들리는 기운이 있을 수도 있다. 비대위가 별 탈 없이 왔는데 막판에 와서 전대 일정 연기 논란 등으로 흔들리기도 했다. 당연히 (새 지도체제가 들어와도 흔들림은) 있다고 본다, 어떤 리더십으로 견뎌내느냐가 중요하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바른미래당은 하나가 아니다. 그 안에 너무나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부분이 존재해 통틀어 이야기하기 힘들다. 집합적으로 합치고 같이 가는게 쉽지 않다. 개별적 차원에서 입당이라든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대 당 차원에서 결합은 힘들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물어보자. 새해들어 경제 행보를 늘리고 있는데 어떤가? 변화 가능성이 보이는가?
▶청와대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려고 하는데 진정성을 느낄 만큼 변화는 없다. 스스로 어떤 미래 비전에 대한 확실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또 특정이념에 빠진 세력에 둘러싸인 것같은 생각도 든다. 둘 다인것 같기도 하다. 우선 우리 경제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비전이 없는 것 같다. 이념성이 강한 소득주도성장으로 갔는데 실패했는데도 수정을 못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정책을 못내놓고 있다. 노조와 싸워야하니까 새 산업정책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립서비스, 퍼포먼스만 한다.
노조와 싸울 의지가 없는데 어떻게 산업정책이 나오겠나? 여론이 나빠지니까 겁을 먹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방향을 못잡는다. 방향 못잡으니까 이해관계 세력을 설득 못하는 것이다.
비전부터 밝히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면 자연스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노조구나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리고 정말 규제를 혁파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체질개선을 해낼 수 없다.
-2차북미정상회담이 임박했다. 어떻게 예상하나?
▶스몰딜이 될것이냐, 빅딜이 될것이냐인데 빅딜이 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북핵 전면 폐지로 가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주고 받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북핵 완전 폐기가 안되고 미국이 물러서는 상황이 되면 일본의 핵무장론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우리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 전체가 더 불안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의 부분적인 폐기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북핵 문제에 더 확실하게 파고들어야한다. 적당히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 역사를 똑바로 봐야한다.
-이제 비대위원장 자리를 내려놓는데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국가경영이라는 큰 꿈을 혹시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여정부 끝나고 아무 것도 안했다. 10년 동안 여의도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총리 지명이 되고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이 됐다. 이만큼 정치권에 깊숙이 들어왔는데 쉽게 잊혀진다거나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겠는가?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정치권 언저리에 있을것이다.
나름 이런 저런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비대위원장 끝내면 지난 10년동안 해왔던 것처럼 글쓰고 강연하던 내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미국으로 갈 것이다. 떠돌이 생활을 하며 건강을 일단 좀 추스릴 것이다.
책도 쓸 예정이다. 매일신문에 내가 여러 명사들과 한 대담 인터뷰가 실렸는데 그것도 책으로 펴내고 지금 쓰고 있는 책도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내 가족에 관한 것이다. 시집 가는 딸아이에게 쓴 긴 편지 등 가족에 대한 생각을 책에 담을 것이다. 인생에 관한 얘기인데 '어떤 인생이 좋은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를 보수의 가치와 연관지을 것이다.
그리고 귀국 때는 큰 담론을 갖고 오겠다. 물론 정치에 관한 담론이다. 꿈이 있는 정치, 꿈을 만드는 정치, 꿈을 파는 정치다. 지금 우리 정치는 오로지 이기는 정치만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 어떻게 이길 것인가는 없지 않나? 내년 총선에서 원내 진입할 것인지도 많이 묻는데 내 이득만 노리는 정치는 안한다. 고향가서 하는 쉬운 정치도 안한다. 당이 원하는대로 희생하는 정치를 할 것이고, 여기가 무덤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 곳에 그냥 묻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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