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수출1호 시(詩) 잇는 할매

입력 2019-02-1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님이여, 강을 건너지 마오/ 님께서 끝내 강을 건너시네/ 강을 건너다 빠져 죽으니/ 님을 어찌하리오.'

고조선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이다. 한국 가요에서 가장 오래됐고 1천800여 년 전 중국 후한 시대 즈음부터 중국 문인들에게도 알려져 그들의 문집에 소개된 노래다. 이러니 아마 한국 민간 가요로서 수출 1호의 시(詩)로, 오늘날 한류(韓流)의 원조쯤으로 봐도 무난한 작품인 셈이다.

그런데 주인공과 노래를 부른 아내의 나이가 흥미롭다. 작품 주인공은 강가에 사는 흰머리 사나이, 즉 삶의 달고 쓴 풍파를 고루 겪었을 백수(白首) 남편이다. 이에 미뤄 이런 기가 막히는 슬픈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아내 역시 가슴 설레던 젊음을 보내고 삶의 뒤안길을 맞은 나이 지긋한 여인이었을 듯하다.

우리의 첫 시는 이처럼 세월의 나이를 보낸 흰머리의 어른이 주인공이었고, 노래를 부른 이도 그만한 세월의 무게를 견딘 아내였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이후 시대와 왕조가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세상에 나온 숱한 노래와 시에는 삶의 고비를 굽이굽이 지나온 옛 사람들의 작품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올 들어 설밑에 잇따라 출판된 경북 할머니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시집 두 권도 이런 흐름과 다르지 않다. 지난달 출판된 경북 칠곡의 권연이 외 91명 할머니가 다듬은 작품을 담은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와 이달에 나온 김천 이길자 할머니 시인의 동시집 '나무 그늘을 파는 새'는 그런 사례다.

경부선 기찻길로 통하는 뭣이 있는가. 두 곳 '할매'의 놀랍고 샘솟는 시의 열정은 감탄할 만하다. 칠곡에서는 지난 2015년 첫 할매 시집 '시가 뭐고?'부터 이번까지 벌써 세 권째다. 김천 이길자 시인 역시 2010년 첫 시집 '홍매화 입술' 이후 3권까지 낸 데 이어 올해 동시집도 냈으니 말이다. '노익장'(老益壯)이다.

옛 우리 '할매' 핏속 시심(詩心)이 세월을 넘어 흘러 끊임없이 이어질 길조(吉兆)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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