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노포(老鋪)의 퇴장

입력 2019-02-09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반월당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부 고령 세대를 빼면 반월당(半月堂)이라고 불러온 공간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반월당은 도시가 바뀌면서 흔적도 남기지 않은채 사라지고 잊혀진 공간의 대명사다. 그나마 남은 지명은 옛 기억을 소환하는, 작고 희미한 단서다.

대구 중구 서문로에 위치한 백화점 무영당(茂英堂)의 사정은 정반대다. 비록 옛 모습은 남았으나 그 존재는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노포(老鋪)의 흔적이다. 무영당은 고추씨 서말을 들고 대구에 정착해 거상이 된 개성 출신 이근무가 1937년 건립한 신식 건물이다. 82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옛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쇠락한 모습만 남았다. 바로 뒷쪽에 신축중인 높다란 오피스텔과 대조를 이뤄 더욱 이질적이다.

1950, 60년대 대구를 대표한 음식점 기린원(麒麟園)도 마찬가지다. 수창동 옛 대구전매청 건너편의 기린원은 예식장과 함께 중화요리로 명성을 떨친 곳이다. 1990년대 말 덕영대반점으로 간판을 바꿔달기는 했으나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왔다. 그런데 얼마전 퇴근길에 보니 가림막이 둘러처졌다. 철거나 개축을 앞둔 모양이다. 문득 서울의 '을지면옥' 철거 논란이 생각났다. 시인 상희구의 시에도 등장하는 '기린원'의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못내 아쉽다.

노포는 한때 근대의 상징물이자 시민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간들이다. 그래서 점점 옅어지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추억과 아련한 감성을 시대 변화나 추세라는 말로 치환하기는 매우 어렵다. 도시를 살아있게 하는, 세포와도 같은 공간들의 파괴는 그만큼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대구 건축물의 절반이 30년 넘은 노후건물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을뿐 노포의 퇴장은 숱한 이야기와 집단 기억과의 단절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지금 우리는 속절없이 잃고, 또 떠나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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