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서 시인이 4번째 시집 '놀이터'를 펴냈다. 최근작 '신호대기'(문학과지성사, 2013)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류인서 시인은 너와 나,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삶의 현장을 '놀이터'라고 이름 붙인다.
'이쪽 기울 때 너는 떠올랐니' - 놀이터- 중에서
◇ 우리는 모두 나그네
하지만, 시인은 '놀이터'를 한쪽이 떠오를 때, 다른 한쪽이 엉덩방아 찧는 구조로 단순대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이와 경쟁, 태어나서 재미있게 놀고, 치열하게 살고, 흔적 없이 죽어가는 '생의 반복'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 놀이터 시소가 떠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시소를 타며 놀던 아이가 자라서 놀이터를 떠나가면 뒤이어 다른 아이가 도착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살아 있는 우리는 모두 나그네이며, 우리가 머무는 곳은 임시천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승리하든 패하든, 이곳이 아이들의 놀이터든 어른들의 전쟁터든, 지구라는 행성이든, 너나 나나 우리 모두는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라는 것이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놀이터'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만났을 거다 우리/ 미끄럼틀과 시소, 혼자 흔들리는 그네, 생울타리에 기댄 작은 청소 수레가 속한/ 모래의 세계/ 이쪽 기울 때 너는 떠올랐니/ 우리는 평균대가 아니어서/ 균형점을 앞에 두고 나뉘어 앉는 세계/ 시소는 약속이 아니어서/ 잽싸게 무게를 버리며 달아날 수 있다/ 떠 있는 빈자리와 쏟아지는 이의 우스꽝스러운 엉덩방아/이것은 갑에게서 가볍게 을이 생략되는/ 저울 놀이/ (중략) 토르소 떠다니는 구름 우주복/ 잠깐 나타났다 지워지는 그림자들 숨소리들' -놀이터- 중에서
※ 토르소(torso)=목 혹은 팔다리를 생략하고 만든 인체 조각 작품.
◇ 끝없는 반복을 긍정한다
시인은 우리의 모체인 지구가 끝없이 태양을 돌 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끝없이 (무엇을 혹은 무엇이든)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노래한다.
'(상략) 수레들을 보았네/ 아흔의 밤을 수레에 나눠싣고 헐거워진 안경알로 시간 굴림대를 밀고 가는 당신/ 손수레 외발수레, 동어반복의 수레들을 팔아 바퀴를 사는, 바퀴를 팔아 다시 수레를 사는 당신이었어/ 따라쟁이 병정개미들이 행군 가고 있는 길이었네 수레 따라 냄새 길 따라' -수레국화- 중에서
'손수레 외발수레, 동어반복의 수레들'은 세상의 모든 수레, 모든 행위를 은유하는 시어일 것이다. '수레들을 팔아 바퀴를 사는, 바퀴를 팔아 다시 수레를 사는'은 끝없이 반복을 거듭하는 존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흔의 밤'을 우리 각자에게 허락된 '생명의 시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아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아직 오지 않은 사람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가시밭길 끝에 장미는 없어
그렇다고 시인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우리 삶이 무의미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걷는 일이 남아 있었다/ 넝쿨 같은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는 이, 모르는 이, 걷고 있는 사람 누구도/ 이 길로 가면 정말 장미인 거냐고는 서로 묻지 않았다' -혁명의 그림자- 중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 고. 그러니 무엇을 이루지 못하는 삶이라고 해서 부질없다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가시밭길 끝에는, 이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거기 '장미'가 있을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은 끊임없이 걷는 것일 뿐, 그 끝에서 장미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우리 몫의 운명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걷는 일이 남아 있어."
시인은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 우리 운명이고, 반복을 거듭하는 동안만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116쪽, 9천원.
▷ 류인서
영천에서 태어나 200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여우' '신호대기'가 있다.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청마문학상 신인상,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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