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 안에 집 하나 지어두고/밤이나 낮이나/비가 오나 바람 불 때/내 집이 온전하나 살펴봅니다/그대도/내 안에 집 하나 짓고/봄날 제비처럼/무너진 곳이 없나 삐뚤어진 곳이 없나/드나듭니다/비새는 마음 없나 휘 둘러보고 날아갑니다' '제비집 전문'
지은이는 늘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탐구와 자연에 대한 동경이 끊이지 않았다. 태어난 곳이 물 좋고 산 좋은 경북 청도인지라 길을 오가며 고향 산천을 바라보면서 부모와 산수에 대한 그리움은 시를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제비집'에서 보듯 일상적 언어로 쓰인 이 시에 어려운 말을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자칫 지치고 다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능력이 이 시에는 있다.
이 시집은 지은이의 처녀 시집이다. 한 장 한 장 시집을 넘기다 보면 허황되고 가식적이고 난삽한 시어는 없다. 그림을 감상하듯 시를 읽어 내려가면 산골짝 샘물이나 공기를 마시듯 청량한 느낌이 든다.
본래 시란 하고픈 말은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이나 심상은 최대한 펼쳐 보이는 언어의 경제학이다. 수만 언어를 써서 진술한다 해도 마음을 다 못 전할 수 있지만 몇몇 단어의 선명한 배치만으로도 오만가지 심사를 전할 수 있는 게 또한 시의 매력 아닌가?
'경자년 섣달 추위로 나를 나으신 어머니/자식이 아프다 우시는 마음은/하늘 끝 어디엔가에 눈물로 얼어/구름 꽃 하얗게 낮달이 서럽구나' '낮달' 전문
어미와 자식 사이 간절한 정이 마침내 겨울의 시린 기운에 꽁꽁 얼어 '낮달'로 형상화 됐다. 이 시를 읽은 독자가 이후에 보게 되는 모든 낮달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 될 것 같다. 사랑과 그리움의 본질을 포착해 이를 형상화하는 시인의 직관적 서정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낮달이 있는 저녁'은 소재의 폭도 넓고 주체도 깊이가 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우리의 일상에서 우러나는 서정성이 잘 묻어나 쉽게 읽히는 게 이 시집의 특장이다. 190쪽, 1만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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