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패널 위 유화, 1488~1490년 사이에 제작, 53x39cm, 차르토리스키 미술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만큼 유명한 화가가 있을까? 이 천재 화가의 역작이자 루브르 박물관의 수퍼스타인 <모나리자>는 서양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는 작품이다.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은 <라 조콩드>(모나리자), <지네르바 데 벤치>,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의 애인을 그린 <아름다운 페로니에>와 함께 다빈치의 4대 여인초상화에 속한다. 151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모나리자>보다 이십여 년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다빈치를 위대한 초상화가로 이탈리아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다.
장밋빛 뺨이 사랑스러운 젊은 여인의 생기를 절묘하게 포착한 이 그림의 모델은 밀라노 공국의 군주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애인이었던 체칠리아 갈레라니(1473~1536)이다.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 궁정화가가 된 시기에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 같은 걸작을 제작한다. 다빈치가 남긴 노트에서 그는 이 여인을 '나의 장엄한 체칠리아, 나의 사랑하는 여신'으로 불렀다. 그녀의 지성적인 미모를 후일 <암굴 속 성모> 속 천사의 얼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단순하게 처리된 어두운 배경과 은은한 조명을 받은 인물 윤곽의 조화, 움직이는 동작 중 한순간 멈춘 자세가 불러일으키는 현장감과 생생함은 다빈치에 의해 새로운 스타일의 초상화가 탄생했음을 말해준다. 체칠리아는 마치 자신을 부르는 애인 루도비코를 향해 금방 고개를 돌린 듯하다. 이 그림은 인물의 개성이 표현되고 혼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이는 점에서 당대의 다른 초상화들에 비해 매우 혁신적이다.
체칠리아는 단순하지만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 머리엔 투명한 베일이 씌워져 있고 목에 걸린 흑진주목걸이는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다. 모델의 꽉 다문 입술, 그리고 담비를 보듬는 손에서는 지성과 엄격함이 묻어나지만, 여인의 빼어난 미모는 감출 수 없는 점이 이 그림의 매력이라 하겠다. 이 세련된 초상화는 모델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총명한 그녀는 어린 나이에 라틴어를 깨쳤고 당대에 그리스의 위대한 여류 시인 사포(Sappho)에 비견할만한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녀의 품에 안긴 담비는 순수와 정절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스포르차 가문을 상징하는 여러 상징물 중의 하나였다. 또한 그리스어로 담비는 '갈레'인데 체칠리아의 성인 갈레라니(Gallerani)의 앞글자와도 일치한다. 담비의 목을 쓰다듬는 그녀의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은 다빈치가 유일하게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그린 드로잉에서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의 목을 애무하듯이 쓰다듬고 있는 레다를 연상시킨다. 즉, 이 그림에서는 절제된 관능미도 엿볼 수 있다.
체칠리아는 1487년에 루도비코의 아들을 출산한다. 그렇지만 이 둘의 관계는 1490년 루드비코가 만토바의 이자벨라 데스테 후작 부인의 동생인 베아트리체와 결혼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독일 미술사가 프랑크 졸네르(1957~ )는 이 그림이 완성된 시기를 봐서 루도비코가 결혼 직전 이별의 선물로 다빈치에게 애인의 초상화를 의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십여 년 후, 체칠리아는 이자벨라 데스테에게서 자신의 유명한 초상화를 빌려달라는 편지를 받았고 그녀는 그림을 빌려주게 되니 흥미로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체칠리아와 이자벨라 모두 예술을 사랑한 공통점이 이 두 여인을 교감하게 했을 것이다. 체칠리아는 베르가미니 백작과 결혼 후 자택에 문학가, 인문학자, 예술가들을 초청하고 후원했

다. 이는 18세기 프랑스 살롱문화의 선구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1798년부터 차르토리스키 가문이 소장했다가 이후 크라코비치에 생긴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있었던 이 그림은 20세기 초입, 폴란드의 한 역사가에 의해 다빈치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1939년, 나치가 강탈했다가 마침내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 그림은 여전히 르네상스 고전미의 화신으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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