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새해 소망 담는 솟대…새 신앙 신라에서 이집트까지

입력 2019-01-28 19:3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김문환 세명대 교수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청동기시대 전시실로 가 보자. 대전시 괴정동에서 1969년 입수한 길이 7.4㎝짜리 청동 유물(BC 4세기 추정)이 눈길을 끈다. 반쯤 훼손된 기와집 모양 한쪽 면에 장대 위 새가 새겨졌다. '솟대'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노란 돼지 해가 밝았다. 우리 민속에 섣달인 구랍(舊臘)에서 설날인 원단(元旦)을 지나 정월 대보름까지 무병장수와 풍년의 복을 비는 제(祭)를 올리거나 솟대를 세웠다. 새해를 맞아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비는 의미로 솟대와 새 관련 신앙의 기원을 따라가 본다.

▷삼한시대 소도(蘇塗)의 유습으로 솟대 신앙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한성백제박물관의 삼한시대 풍습 모형을 보자. 큼직한 나무 아래 샤먼(제사장)이 두 팔 벌려 서 있고, 사람들이 무릎 꿇고 샤먼의 말에 귀 기울인다. 주위에 빙 둘러 세운 솟대가 보인다. 무슨 근거로 이런 모형을 만들었을까? '한국민속신앙사전'에서 솟대를 찾아보자.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 삼한시대의 소도(蘇塗) 유풍으로서 '솟아 있는 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한나라 솟대. 난주 감숙성 박물관
한나라 솟대. 난주 감숙성 박물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소도(蘇塗)에 큰 나무 세워"

삼한시대 소도(蘇塗)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중국 진(晉)나라 학자 진수가 280~289년 사이에 쓴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삼한을 다룬 '한전'(韓傳)에 다음과 같이 소도를 묘사한다.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했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를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제사장 천군이 소도에 세운다는 큰 나무가 솟대의 기원임을 알 수 있다.

솟대.5세기 고분시대. 카시하라 고고학 자료관
솟대.5세기 고분시대. 카시하라 고고학 자료관

▷일본, 중국, 페르시아 솟대와 새 신앙…솟대가 변한 도리이(鳥居)

일본 오사카 남부의 나라(奈良)현 카시하라(橿原) 고고학 자료관으로 가 보자. 한성백제박물관서 보던 소도와 닮은꼴 모형을 만난다. 새로 분장한 샤먼 아래로 무릎 꿇고 비는 사람들, 주변에는 솟대다. 5세기 솟대 유물도 전시 중이다. 일본의 신사 입구에 높다랗게 세운 나무 기둥 문을 '도리이'(鳥居)라고 부른다. 한자로 풀면 새가 사는 집이다. 솟대의 변형으로 본다. 황하강 상류 난주의 감숙성박물관에 한나라시대 솟대가 기다린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대만 고궁박물원에는 홍산(紅山)문화의 옥으로 만든 새(BC 3500~ 3000년), 양자강 하류 신석기 농사문명 양저(良渚)문화의 옥으로 만든 솟대(BC 2500~2200년)가 탐방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페르시아 전시실에서 만나는 2점의 청동 솟대, 2점의 반짝이는 알라바스터 솟대 제작 연대는 BC 3300~3100년이다. 홍산문화와 비슷하다.

▷페니키아, 이집트…새가 된 영혼이 영생 얻어 저승으로

알파벳의 기원 페니키아 문자를 만든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인들은 사람이 죽은 뒤 영혼 '루아'가 육신과 떨어져 새가 돼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이는 이집트에서 온 풍습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장례식 때 입을 열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살도록 해준다는 개구의식(開口儀式)을 치른다. 그러면 '바'(Ba)라고 하는 새 모양 영혼이 미라를 지키고, '카'(Ka)라고 부르는 영혼이 저승으로 영생 심판을 받으러 떠난다. 죽어서 새로 바뀌는 이집트의 영혼 바는 죽어서 새가 돼 하늘과 소통한다고 믿던 삼한의 영혼 신앙과 맥이 닿는다. BC 3000년대부터 이집트,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반도까지 유구한 문화의 흐름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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