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섭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새해다. 동녘 하늘에 햇살이 퍼지듯 일상의 소중함을 팽팽하게 당겨본다. 살아가면서 삶의 허무를 버티게 해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도 생각해 본다.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는 총 3막으로 일상생활, 사랑과 결혼,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평범한 일상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가치를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작가 손톤 와일더(1897∼1975)는 소설과 드라마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 1927년 '산 루이스레이의 다리', 1938년 '아워타운', 1942년 '위기일발'등을 발표했다. 작가는 소설과 희곡에서 본성에 내재하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견해를 많이 다루었다.
1막에서는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침이면 우유와 신문이 배달되고 늦은 오후가 되면 아이들과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다. 너무나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이다. 2막에서는 조오지와 에밀리의 결혼장면이 펼쳐진다. 결혼식이 과거로부터 되풀이 되어온 보편적인 것임을 설명한다. 3막은 공동묘지와 죽음이 주제이지만 죽음을 통해서 삶이 재인식된다.
"안녕, 이승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눈물을 흘리며 무대감독을 향해 불쑥 묻는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117쪽.

죽은 에밀리가 다시 무덤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일상과 이별하는 독백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모성적 부드러움과 무(無)의 신비가 공존한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이 우아한 죽음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승의 마지막 이별일 때 이 대사를 떠올리면 위로가 될 것만 같다.
우리에게 들려주는 읍내 이야기는 언덕 너머의 목소리로 겸허하게 젖어온다. 만물이 지닌 본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도 한다.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통해서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목소리가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가는 구심점은 무엇인가? 자신의 삶을 음미하듯, 당기는 인연의 고리 속에서 엄숙함과 익살스러움을 엿본다.
삶을 적극적으로 살라는 '카르페디엠'의 메시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빛깔, 자연의 빛깔을 외면한 채 장님으로 세상을 사는지도 모른다.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맨서, 괜히 주위 사람들이 감정이나 짓밟고, 마치 백만 년이나 살 듯 시간을 낭비한다.
'우리 읍내'는 엘리엇의 말을 빌리면,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안에 포함되어 있는"것이기도 하다. 우리 안의 신화처럼 탄생과 죽음은 끝없이 반복된다. 긴 여운 속의 단면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듯, 삶이 피곤한 시계처럼 맥이 풀일 때 이 책을 권한다.
정화섭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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