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인사 확정 전날 대구은행 부장급 2명이 임원 발탁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임원 발탁의 기쁨이 퇴직의 아픔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인사기록 중 일부가 누락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조사가 없어서다.
같은 달 31일 DGB금융지주는 강면욱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DGB자산운용 대표로 선임하려 했다. 같은 날 정부는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기업을 공시했다. 다음 날인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DGB자산운용이 포함돼 있었고, 강 전 본부장은 취업 제한을 받는 신분이었다. 하루라는 틈을 노렸지만 논란 끝에 결국 낙마했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주는 잇따라 검증에 실패하면서 인사시스템의 허술함을 노출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에 대한 약속이 지켜졌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 같은 인사 실패를 책임지는 사람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이 말한 또 하나의 약속이 시험대에 올랐다. 은행장을 겸직하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달 11일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위원회'(자추위)는 차기 은행장 후보에 적임자가 없다며 김 회장이 은행장을 겸직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에 과도한 권한 집중과 장기 집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장이 아닌 지주 이사회(의장 조해녕)가 나서서 공정한 인사관리와 권력 독점을 없애겠다는 약속을 했다. 경영의 최종 책임자인 지주 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날 은행 임원들은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란다. 그런데 이들 임원 16명(감사 제외) 중 11명은 김태오 회장 때 발탁됐다. 나머지 5명은 올해 12월 26일에 임기가 끝이 난다.
현재 은행 임원은 회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한목소리가 단합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임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복기(復棋)이자 미래의 데자뷔와 같은 장면이 다음 날 펼쳐졌다. 이들 임원의 선배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억울하게 비리 인사로 낙인찍혔다고 하소연했다. 수십 년간 은행에 몸담으며 헌신한 대가가 후배로부터의 명예훼손이라는 회한도 담겨 있다.
열심히 일하거나 한목소리를 내도 미래는 약속돼 있지 않다. 달콤한 말과 뜨거운 확신은 때론 쓰고 차가운 현실에 부딪힌다. '분리'라는 약속이 1년도 안 돼서 '겸직'이 된 것처럼.
학창 시절 힘 있는 친구들이 버스 뒷자리를 장악했듯 권력의 징후는 '보이지 않음'에 있다. 지배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권력의 욕망이자 척도이다. 부메랑이 될 약속을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미 지배하는 것이다. 겸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최고경영자가 지역사회에 직접 입장을 밝힐 때다.
지주 자추위나 은행 임원들이 대신할 수 없다. '약속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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