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狐假虎威<호가호위>, 김정은 위원장은 왜 중국에 갔을까

입력 2019-01-14 19: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여우가 굶주린 호랑이한테 잡혔다. 먹혀버릴 위기에 처한 여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넌 날 잡아먹으면 안 돼. 나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왔단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고 도망가지 않는 놈이 있는지 보라고."

호랑이는 여우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짐승들은 모두 죽어라 도망을 쳤다.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책'(戰國策전국시대 책사의 변설과 권모술수를 기록한 책략서) '초책'(楚策)의 처음에 나오는 우화이다. 짐승들이 도망을 간 것은 여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호랑이 때문이었다. 호가호위의 유래이다. 지금은 강자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나쁜 뜻으로 쓰인다.

나는 어렸을 때 이 우화를 감명 깊게 읽었다. 기지를 발휘하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여우처럼 침착하고 총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우는 살기 위해 임기응변한 것뿐, 남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나쁜 의미로 쓰일까. 짐승들이 도망간 이유를 여우는 알고 호랑이는 몰랐다. 호랑이가 왜 여우의 뒤를 따르는지도 모르고 짐승들은 줄행랑을 쳤을 뿐이다. 여우는 한 번의 '성공'을 착각하여 자기를 진짜로 대단한 존재로 여기고 호랑이를 끌고 다니면서 짐승들을 위협하고,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가 늙어 이빨이 빠져버리거나 여우의 곁을 떠나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호랑이를 두려워했던 숱한 짐승들의 공격을 받아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것이다.

무엇이든 적당히 해야 한다. 과하면 해를 입는다.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찾았다. 중국의 위세를 등에 업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남한 역시 미국을 자기를 지켜주는 호랑이쯤으로 여길까. 여우의 지혜로 우리 힘으로 뭔가 해볼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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