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월의 어느 날, 황효영 시어머님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날이 지나고 달이 바뀌고 또 새로운 해가 밝았습니다.
어머님은 정말 조용히 작별 준비를 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느라 오랫동안 얼굴을 뵙지 못한 숙부님과 숙모님을 만나고 나서 여한 없어진 것일까요. 호주에 사는 꿈에 그리던 둘째 딸과 화상통화 하며 환하게 웃기까지 하시더니. 어머님과 띠동갑인 손자의 결혼식 끝나고 제 자리 잡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던 것일까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와 얼굴 뵙고 손잡으며 "오래 사셔야 합니다. 요즘에는 90은 기본이랍니다. 조금 더 지나면 불멸의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잖아요. 건강 잘 챙기셔요." 이야기하실 때도 엷은 미소로 답하곤 하더니 끝내 훌훌 날아가 버리셨습니다.
시아버님 세상 떠나고 9년, 정년퇴임 십수 년이 지날 동안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내며 깔끔하게 차려입으시고 하이힐 즐겨 신고 여행 다니며 인생을 즐겁게 보내셨지요.
어머님은 늘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걸어야 산다!"고, 건강을 잘 챙겨야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며 네모반듯한 판에 하얗게 칠하고 정성들여 글자 써서 장식해 놓으셨지요, 그 글귀는 어머님 생의 철학이 된 듯 아직 집안 복도에 놓여 있는데, 어머님은 떠나가셨습니다.
건강 지키기에 철저해도 자꾸만 힘이 빠진다고, 더 걷지 못하겠다고 하며 주저앉으셨지요. 걷지 않으니 근육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정말로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영양 공급을 위해 노인병원에 입원하였고. 그곳에서도 꼿꼿한 자세 유지하며 잘 견디시더니.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셨던 성격대로 자식들의 바쁜 일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싶던 날, 밝은 대낮에 사람들이 많을 점심 때 떠난다는 기별을 급히 전하셨습니다.
한 세상 살다가 하직할 때는 누군가에게 그 소식을 미리 알리는 것일까요. 전날 밤 웬일인지 며느리인 종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자꾸 부르는 것 같아 몇 번이고 대문을 들락거렸지요. 그렇게 밤을 새고 출근해 진료하고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동료가 식사하러 가자며 왔을 때도 왠지 자리를 뜨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배고프지 않다는 핑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지 10여 분, 식사 갔던 주치의 선생님이 다급히 전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모님이 갑자기 숨을 모으니 먼저 상황 좀 살펴봐 달라고. 불에 덴 듯 달려가 어머님 병실로 올라가니 심각하더군요.
어머님은 평소에 늘 말씀하셨지요. 마지막 갈 때가 되면 몸에 아픈 것은 하지 말고 불필요한 시술은 하지 말고 조용히 눈을 감고 가고 싶다고. DNR(Do not resuscitate·심폐소생술거부) 서류에 서명까지 하셨습니다만, 자식이자 의사로서 그냥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승에 더 머무르게 하고 싶어 최선을 다해달라고 의료진에게 부탁하였지요. 그것이 어머님의 몸과 마음만 더 아프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birth to death), 그 과정이 참 단순해 보이지만 정말 큰일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애쓰시던 어머님의 모습, 그 순간들을 좋은 인연으로 영원히 잘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음성이 들려옵니다.
"걸어야 산다" 근심 걱정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어머님.
정명희 대구의료원 1소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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