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히든 피겨스

입력 2019-01-04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시어도어 멜피 감독이 2016년에 발표한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마이너리티'로 취급받아온 흑인 여성들이다. 인간 존재를 피부색으로 나누고, 여성이라는 굴레에 편견까지 덧씌워 차가운 시선으로 보던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감독은 앵글에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1960년대 초 미국 내에서도 흑인 차별이 가장 심했던 버지니아주에서 '흑인+여성'이라는 조합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일하는 공간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던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라는 점은 단순히 차별과 편견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대척점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이들은 남다른 재능과 꿈을 갖고 '백인+남성' 구도를 조금씩 허물고 영화 제목처럼 '숨은 영웅들'의 실화 스토리를 완성한다.

이처럼 이중 핸디캡을 보기 좋게 극복해낸 이들은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매니저이자 전산 전문가 도로시 본, '인간 컴퓨터'로 궤도 비행 성공에 기여한 수학자 캐서린 존슨,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항공엔지니어 메리 잭슨이다. 이들은 미·소 우주기술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크게 공헌한 숨은 공로자다.

하지만 이들의 공적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흑인 여성'이라는 프레임 탓이다. 1958년 나사 출범 초기 고용된 흑인 여성들은 별도의 분리된 시설에서 근무할 정도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지금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가 어려운 이유다.

미국 뉴욕주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기념일을 제정한다는 소식이다. 뉴욕주 상·하원은 3월 1일을 '유관순의 날'로 정하는 결의안을 이달 중에 상정키로 했다.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가 세계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여성 15명을 선정해 추모 부고(訃告)를 연재하면서 유관순의 삶을 재조명한 것이 계기다.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억압과 차별을 뚫고 치열하게 나아갔던 히든 피겨스, 숨은 영웅들의 귀환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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