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의 엄마가 말린 남미여행](12.끝) 브라질 살바도르

입력 2018-12-26 19:30:00

아름다운
아름다운 '모로 데 상파울로'의 해변.브라질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선명하게 남아있는 제국주의의 흉터 브라질 살바도르

제법 쌀쌀했던 보고타에서 도톰한 가을옷을 입고 출발한 우리는 뜨거운 도시 브라질 살바도르에 도착했다. 예림이와 난 여행 중 한 번도 떨어져 다닌 적이 없었는데, 비행기 표 때문에 각자 다른 비행기 편을 타고 이동하여 살바도르 공항에서 만났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해보니 예림이의 메인 배낭이 사라졌다.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예림인 가방 안에 크게 중요한 물건은 없다며 일단 숙소로 가자고 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 당당히 후리스를 입은 예림이의 뒷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살바도르는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270만의 인구가 있는 이곳은 브라질이 생기고 난 후 최초에 수도 역할을 했으며 현재는 상파울로, 리우데자네이루에 이어 브라질 제3의 도시로도 불린다. 살바도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띤 첫인상은 다른 지역들보다 유난히 많은 흑인 비율이었다. 알고 보니 포루투갈의 식민지 시절 살바도르는 남미 최대의 노예시장이었다. 사탕수수 농업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은 한 명당 5달러에 수입되었다. 그들의 인권은 동물보다도 못했다. 당시 노예선은 300~500명씩 노예를 운반했는데, 그중 40%가 이동 중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시장에 팔기 전 지하감옥에 노예들을 가두어 놓았는데, 향수병으로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바다보다 수위가 낮은 곳에 있던 지하감옥에 물이 차서 모두가 수장당했던 잔혹하고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폼 파티와 보트파티를 모두 이끌었던 매력적인 DJ와 댄서
폼 파티와 보트파티를 모두 이끌었던 매력적인 DJ와 댄서

▶달콤한 보사노바와 역동적인 파도가 어우러지는 곳

살바도르는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여 해가 질 무렵부턴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예림이의 짐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숙소로 배달되었다.

항공사 측의 실수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비행기에 실려버렸다고 한다. 예림이는 가방이 돌아올걸 예상했던 것처럼 덤덤하게 가방을 받았다. 숙소까지 가볍게 와서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살바도르에 있는 동안 우리가 머물렀던 지역은 남서쪽 끝에 위치한 바하(barra) 해변지구였다. 공항 직원에게 살바도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으로 알려달라고 해서 가게 된 곳이다.

다음 날 우린 바다 수영을 나섰다. 물은 맑았고 파도는 정말 거셌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깊은 곳까지 가서 키 높이 만큼 올라오는 파도를 맨몸으로 맞았다.

놀다 보니 현지 꼬마아이들이랑 친해져서 같이 버려진 스티로폼 박스 위에 누워 패들링도 하고 물장난도 치며 놀았다.

현지인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는데 우리에게 '체 라가토(che lagarto)' 라는 호스텔을 추천해줘서 그쪽으로 옮겼다. 체라가토는 남미 전역에 분포해있는 호스텔 가맹점이다.

대부분 좋은 입지에 좋은 시설, 적당한 가격으로 구성되었고 홈페이지도 잘 운영되고 있어서 남미여행을 하는 여행자라면 한번 이용해볼 만한 곳이다. 호스텔 객실을 배정받고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파네마 걸(Ipanema girl)' 노래의 선율이 들려왔다.

누군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유명한 브라질 노래인데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곡이었다. 소리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노래는 끝이 났다.

가수에게 가서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고 한 번만 불러줄 수 없겠냐고 했더니 공연은 끝이 났고 사람들이 편하게 쉬는 시간이라 작게 불러 주겠다며 마이크 없이 기타로 작은 공연을 해주었다.

그 순간이 정말 꿈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바닷가로 나가 잼배와 기타를 연주하며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아름다운 모로 데 상파울로의 해변.에메랄드빛에 잔잔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모로 데 상파울로의 해변.에메랄드빛에 잔잔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숨은 파티의 성지 모로 데 상파울로

살바도르에서 남쪽으로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모로 데 상파울로 (Morro de São Paulo)'라는 섬이 나온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이곳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이다.

이곳에 오기 전엔 몰랐던 곳인데 살바도르에서 만난 친구마다 이 섬에 대해서 극찬을 했다. 바다 중독자인 예림이와 난 '섬에 있는 해변은 항상 옳다'라는 일념으로 1박 2일 동안 섬에 다녀오기로 했다.

배만 타면 되니까 간단히 가자며 짐을 한둘씩 내려놓다가 옷도 짐이라며 비키니에 티만 대충 걸쳐 입고 돈과 휴대폰만 챙긴 후 호스텔을 떠났다.

그런데 버스와 배를 각각 2번씩 갈아타야지 도착하는 곳이었다. 거기서 비키니만 입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 둘 뿐 이였다.

두 명분의 짐을 줄여준 우리를 보고 짐꾼 아저씨들은 쿨 걸! 이라며 아주 좋아했다. 두 쿨 걸들은 그렇게 섬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모로 데 상파울로의 거리. 오히려 낮이 더 한적한 느낌이다.
모로 데 상파울로의 거리. 오히려 낮이 더 한적한 느낌이다.

듣던 대로 섬은 정말 아름다웠다. 영롱한 노란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마치 365일 축제만 하는 동화 속 마을처럼 사람들은 하나같이 들떠 보였다. 숙소를 나와 아이스크림 가게와 신기한 길거리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걸어 다녔다.

분위기 좋은 식당, 독특하고 예쁜 수영복 가게가 정말 줄을 이뤘다. 이 섬을 보니 예전에 여행했던 인도네시아에 길리 트라왕간이 떠올랐다. 작은 섬 전체가 오로지 휴양에 최적화된 느낌이다. 그리고 클럽파티가 정말 많았는데, 늦은 밤에도 사람이 많아서 안전하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이곳에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던 폼 파티, 보트 파티를 즐겼다. 그곳에 흑인 스탭들은 춤을 정말 잘 췄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소울이 만나서 더욱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일까?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어서 처음엔 좀 긴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흥이 올라왔고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섬이 워낙 작아서 그런지 파티 하고 난 다음 날 거리를 돌아다니면 파티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자주 마주쳤고 동네 친구 만나듯 반갑게 인사하고 조그만 음악 소리라도 나오면 함께 춤을 췄다. 이렇게 춤이 일상에 배어있는 사람들이라니, 브라질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곳의 해변들은 살바도르처럼 역동적이고 재밌진 않지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에 잔잔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뿜어낸다. 가족 단위로 왔을 때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우리는 이 섬에서 1박만 하고 살바도르로 돌아가 리우 데 자네이루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리우 데 자네이루는 치안도 많이 열악하고 아무래도 바다는 이 섬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정을 늘려 3박 4일 동안 머물렀다.

옷이라고는 수영복과 그물 같은 티밖에 없어서 차가운 배 때문에 계속 설사를 동반해야 했지만, 이 사랑스러운 섬에 머무는 데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엄마가 말린 남미여행'과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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