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독일 연말 분위기에 대한 회상과 한 해의 반성

입력 2018-12-24 10:39:09 수정 2018-12-24 18:53:18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크리스마스카드 손수 적어 보내고

집집마다 진짜 나무 트리 사서 장식

독일 성탄절은 가족과 보내는 명절

한 해 조용히 돌아보고 충분히 휴식

필자가 스무 살에 독일 유학을 가기 전, 독일의 연말 분위기 하면 대중매체에서 접한 네온 불빛이 반짝거리는 화려한 도시와 거리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막연하게 상상했던 독일의 연말 이미지는 미국식 연말 풍경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12월의 독일 분위기는 고요하고 쓸쓸하다. 평소 매우 검소한 독일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쇼핑센터가 붐비는 광경을 제외하면, 연말은 대체로 온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는 휴일이며 대중교통 운행은 많이 제한된다.

독일에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그 당시, 연말이 되면 직장 동료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사고 직접 손으로 쓰는 일에 분주하다. 정성스럽게 수기로 쓴 카드 선물을 자신의 사무실에 펼쳐놓고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는 독일 사람들에게서 화려함보다 소박함과 진정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엿볼 수 있다.

12월이 되면 대림절 때 가정마다 대림환(環)을 만들거나 구입해서 대림 시기 4주에 맞춰 매주 1개씩 대림초에 불을 붙인다. 또한 집집마다 조형물이 아닌 진짜 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장식하고, 각 도시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여러 가판대 상점이 줄지어 서 있고 회전목마가 있다. 추운 겨울 날씨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전통 수공예품과 크리스마스 전통 쿠키를 구경하고 글뤼바인(Gluhwein)이라고 하는 따뜻한 와인을 마시면 연말 분위기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은 전통과 풍습을 지키려는 독일인들의 성향 때문인지 가판대 상점 장소, 볼거리와 먹거리 메뉴가 매년 똑같아서 지루하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성탄절 전날까지 열리고, 12월 31일(새해를 맞는 전날 불꽃 파티인 Silvester)까지 독일 거리는 정말 매우 조용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 분주했던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성탄절에 교회를 가고, 가족과 함께 직접 구운 크리스마스 쿠키와 거위 구이를 먹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은 선물을 주고받고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성탄절을 보낸다. 독일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이다.

한편, 대부분 유학생들에게 2주간(12월 23일부터 1월 첫째 주까지)의 크리스마스 방학은 쓸쓸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처럼 독일의 연말은 시끌벅적한 축제보다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이지만,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고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이번 학기 마무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학교 일과 관련해서 마음의 여유는 여전히 없다. 해 놓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12월 말이 되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스로 모든 일을 준비하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몸담은 지 몇 년 만에 나도 모르게 뭐든지 '닥쳐야 하는' 성향으로 젖어 버렸다. '미리미리모드'일 때에는 계획했던 일을 마치지 못하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왔건만, 막상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이 솟아나는 듯, 제출 일정이 다가오면 컴퓨터의 자판은 언제나 '경이로운 허구'를 생산해내곤 했다. 물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내 양심은 이렇게 거짓말해도 되는거냐고 외치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채근하지도 않고, 무엇인가 다급한 일이 닥치지도 않는데 무슨 일을 계획해서 실천에 옮기기란 웬만한 결심으론 이행하기 어려운 것 같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어쩌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과 자유로운 선택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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