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 2막을 즐기는 사람들, 이야기 할머니 김경순 씨

입력 2018-12-10 19:30:00

전래동화 등 옛 이야기 들려주는 '이야기 할머니'

지난 6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사월동 한 유치원. 김경순(64)할머니가 구수한 목소리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에 따라 할머니의 목소리와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자 원생들은 이야기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놀라기도 하고 슬퍼도 하면서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이야기할머니' 김경순(64) 씨다. 김 씨는 매주 월, 수, 목요일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방문해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2015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4년째 활약하고 있어요."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있어 다음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조리사였던 김 할머니는 2010년 퇴임했다. "평생을 바쁘게 일한 탓인지 퇴직 후 여유로운 시간이 오히려 낯설었다고나 할까요. 쉬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 노년에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터 컸어요."

우연히 신문을 보다 '이야기 할머니'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이것이다' 싶었다. 유아교육과 관련한 자격증이 있으면 도움이 될까봐 유아보육과에 입학해 자격증도 땄다. 이야기할머니가 되는 과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만 56세에서 70세 사이의 지원자 가운데 서류 심사와 면접을 치렀다. 그 뒤 6개월 동안 실기와 이론 교육을 마쳐야 비로소 '자격'이 주어졌다. "이야기라면 역시 할머니 아니겠어요?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가 아이들의 심성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었습니까? 하지만 요즘 핵가족 시대다 보니 아이들이 할머니의 정을 잘 몰라요. 동화 구연 할머니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단절되기 쉬운 세대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주일에 몇 번이지만 아이들이 우리를 통해 할머니라는 존재, 따뜻한 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김 할머니는 이야기할머니 사업이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인성 함양 기회를, 어르신들에게는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핵가족으로 변화한 현대 가족문화에서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할머니는 "오히려 제가 아이들과 만나면서 삶의 활력을 느끼고 있다"며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한다는 사명감에 책도 많이 읽고 공부하는 시간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

김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엄선한 것들이다. 다양한 전래동화, 선현 미담 중에서 우리 문화의 긍정적 가치가 녹아 있고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무릎교육으로 전해지는 마음이다. 옛이야기를 고리로, 사회적 활동에서 보람을 찾는 어르신과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이 연결된다는 것. 김 할머니는 "우리 나이가 되면 어디서 크게 반겨 주는 곳이 없는데,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다녀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처음에 할머니를 낯설어하고 혼자 손장난 하면서 이야기를 잘 안 듣던 아이일수록 나중에는 품에 와서 안기고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는 선생님이 직접 손으로 떼어 놓지 않으면 못 가게 할 정도"라며 웃었다.

김 할머니는 동화 구연이라고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교감을 나눈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에는 개구쟁이도 말썽쟁이도 얌전해지고 눈을 반짝이며 집중을 해요.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들이 테이프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할머니가 바로 앞에서 육성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라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든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는 만큼이나 자신도 기다려진다고 했다. "이야기가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 품에 폭 안기는 아이들을 보면 동화 구연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보람이 커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경순 할머니.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경순 할머니.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경순 할머니.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경순 할머니.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