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오페라 '라보엠'의 첫사랑 이야기

입력 2018-12-10 11:22:36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1. 주머니는 텅텅 비었지만 열정 가득한 청년예술가들이 한 칸짜리 옥탑방에 모여 산다. 시인과 화가, 음악가 그리고 철학자. 때는 칼바람 부는 겨울이지만 언감생심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었던지 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좀 벌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기로 하고, 당장 카페로 가자며 의기투합한다. 오늘은 멋진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2.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곧 뒤따라 가려던 시인은 뜻밖의 방문객을 맞는다. 마찬가지로 춥고 배고픈 처지지만, 어딘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청순한 미모의 옆방 아가씨가 뭔가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이다. 한 눈에 서로 반한 시인과 아가씨는 곧장 커플이 되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다. 시인은 아가씨의 찬손을 따뜻한 마음으로 녹여주고 싶었다. 거리에는 하얀 눈이 축복처럼 내리고, 불빛 가득한 카페는 파라다이스처럼 아름답다.

#3. 시인과 아가씨는 그 해 겨울을 함께 지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가씨는 병색이 짙었으며, 시인은 여전히 가난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웬일인지 자꾸 부딪치게 된다. 어느 날 크게 다툰 두 사람은 이제 헤어지자며 맘에 없는 소리를 한다. 아가씨는 시인에게 부담을 주는 자신이 미웠고, 시인은 아픈 그녀를 돌보지 못하는 스스로가 못내 괴로웠던 것이다.

#4. 아가씨와 헤어진 시인은 하루도 그녀를 잊은 날이 없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항상 서글픈 마음이다. 그녀도 마찬가지였을까. 어느 날, 죽음의 그림자를 이끌고 시인을 찾아온 아가씨는 숨겨뒀던 진심을 전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도 없게 된 두 사람. 아픈 첫사랑의 추억만 시인의 몫으로 남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것이다. 젊었고, 그래서 가진 것이 없었고, 매사에 서툴렀고, 늘 뒤돌아서서 후회했던 시간들이지만, 먼 훗날 되짚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는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가장 사랑받는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La Bohème)은 이렇게 아련한 첫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렌트'로 각색돼 또 그만큼 사랑받은 걸 보면, 어느 시대에나 어떤 영화 혹은 TV드라마로 꾸며진다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스토리인 것 같다. 다가올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역시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게 되는 오페라 '라보엠'. 가장 낭만적이며 품격 있는 연말을 보내는 데 이보다 멋진 순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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