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슈 풀이] <7> '노란 조끼'에 프랑스 얼룩지다

입력 2018-12-06 09:42:30 수정 2018-12-07 09:39:30

프랑스 파리에서 17일(현지시간)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며
프랑스 파리에서 17일(현지시간)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며 '노란 조끼' 등을 입은 시위자들이 거리를 메운 채 엘리제궁으로 향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30만명 가량이 시위에 나선 가운데 동부 알프스 산간지역인 샹베리에서는 시위를 나온 63세 여성이 당황한 여성운전자의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고, 전국에서 400명 이상이 시위 과정에서 차량에 부딪히는 등 다쳤다. 연합뉴스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를 집어삼켰던 '노란 조끼' 시위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프랑스 정부가 시위를 촉발했던 유류세 인상조치를 철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직진' 의지를 보였던 정부가 일단 한발 물러섰지만 노란 조끼 시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노란 조끼 측이 정부 조치가 미흡하다며 8일 전국적인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다만 정부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강대강'(强對强) 상황이 해제되면서 시위가 진정세를 보일 실마리가 생겼다. 평온한 프랑스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해 정리해봤다.

◆노란 조끼 시위의 발단

'노란 조끼'(gilet jaune·질레 존)는 유류세 인하 요구 집회의 별칭으로 운전자가 사고를 대비해 차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형광 노란 조끼를 집회 참가자들이 입고 나온 데서 붙여졌다.

지난달 17일부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를 촉발한 도화선은 정부의 유류세 인상 방침이었다. 마크롱 정부는 기름값 인상을 통해 차량 운행을 억제함으로써 대기 오염을 줄인다는 배기가스 저감 정책에 따라 올해 들어 경유와 휘발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각각 23%와 15% 인상했다. 내년 중 3~5% 추가 인상 방침도 밝혔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리모주에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리모주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노란 조끼' 2차 대규모 집회가 열렸으며 파리에서는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 등을 동원했다. 연합뉴스

이에 민심은 폭발했다. 특히 생업이나 생활 여건상 차량이 필수적인 대도시 외곽이나 중소 도시, 농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만을 공유하면서 삽시간에 전국적인 연대망을 결성했다. 트럭 운전사들과 택시 운전사들이 주축이었던 지엽적인 집회는 지난달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로 커졌다. 이때 열린 1차 집회에는 30만 명 가까이 참여했다.

유류세 인상은 이번 시위의 기폭제일 뿐, 밑바탕에는 그동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추진해 온 개혁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취임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친(親)기업 정책을 밀어붙였다.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규제와 조세 부담을 완화해 줘야 투자가 활성화돼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반드시 개혁에 성공해 고비용'저효율로 대변되는 '프랑스병(病)'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 소신에 따라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25%까지 추락한 지지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컸지만, 그는 '마이웨이'를 고수했다. 서민 입장에서는 이런 개혁 정책이 부자들만의 정책으로 비쳤고 이번 시위가 '못 가진 사람들'의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예상치 못한 폭력사태로 변질

한 문화재 전문가가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투알 개선문에서 전날

들붙처럼 번지던 노란 조끼 시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초반에 도로를 점거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던 수준의 시위가 폭력이 가세하면서 유혈 사태로 변질한 것이다.

처음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던 지난달 17일만 해도 폭력 수위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30만 명 가까운 시민이 참여하면서 부상자가 4백 명 넘게 발생했지만, 애초 집회 시위 구호였던 '통행 봉쇄'에 집중됐고, 갈등도 도로를 점거한 시위 참가자들과 갈 길이 막힌 운전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2주차인 지난달 24일부터 시위의 양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주요 통행로 등을 막아선 시위대들로 물류가 봉쇄되고 지역의 대형 창고들을 오가는 길목도 차단됐다. 시위대 사이에 '파리로 집결하자'는 구호가 내걸렸고 일부 시위대가 폭력과 방화를 일으키면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격화됐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가 5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필리프 총리는 이날 의원들에게
한 문화재 전문가가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투알 개선문에서 전날 '노란 조끼' 시위대가 쓴 낙서 '마크롱 퇴진'을 지우는 작업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폭력 행위가 극에 달한 때는 지난 주말의 3차 집회였다. 시위대가 파리로 집결하면서 폭력 행위는 한층 과격해졌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파리의 경계표인 '개선문'의 훼손이다.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과격시위대는 파리 개선문 안쪽의 마리안 조각상 얼굴 부분을 파손했다. 마리안은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 프랑스인들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개선문 안 전시공간에 있던 소형 개선문 모형도 파괴됐다. 또한 개선문 외벽에도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마크롱 퇴진' 등의 낙서를 남기기도 했다.

시위로 인해 지금까지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3차 집회였던 이달 1일 남부 마르세유에서 80세 여성이 얼굴에 최루가스탄을 맞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중 숨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3차 집회에서 경찰관 17명을 포함한 110여 명이 다치고 270여 명이 체포됐다.

정부는 평화적인 시위를 하려는 시민 사이에 일부 극우'극좌세력이 끼어들어 폭력시위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했다. 벤자맹 그리보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1천∼1천500명 정도가 경찰과 맞서 싸우고 파괴하고 약탈하기 위해 극렬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노란 조끼 시위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1일 파리의 평화 집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한 이들 372명을 체포했다.

◆위기 직면한 마크롱 정부

마크롱 정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류세 인상 방침을 고수했다. 노란 조끼 시위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시위로 프랑스 전체가 극심한 혼란을 겪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4일(현지시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유류세 인상을 6개월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애초 내년 1월에 계획한 유류세의 인상을 6개월간 미룬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5일(현지시간) 마크롱 정부는 유류세 인상을 아예 철회한다고 밝혔다. 또한 부유세 부활 및 탄소세 인상 중단 검토 등 일련의 정책을 재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일(현지시간)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오른쪽)과 함께 전날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던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가 5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필리프 총리는 이날 의원들에게 '노란조끼' 시위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인 유류세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노란 조끼' 시위의 대변인 격인 벤자맹 코시는 한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과자 부스러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빵을 원한다"면서 "정부가 유류세 인상을 잠시 유예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올려온 유류세를 원래대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란 조끼 시위는 8일에도 이어간다고 했다. 이번 정부의 발표에도 시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피력한 것이다.

이번 시위는 지금까지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마크롱 정부에 커다란 타격을 줬다. 특히 유럽의 대표적인 '스트롱맨'(강경 지도자)으로 여겨졌던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 부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번 시위의 파괴력이 예상을 훨씬 넘어서며 여론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폭력시위로 얼룩진 파리 중심가의 모습은 마크롱의 바닥을 치는 낮은 지지율과 연결되면서 프랑스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일(현지시간)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오른쪽)과 함께 전날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던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노란 조끼' 시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 조끼' 물결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국정 전반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프랑스 언론들은 마크롱 정부가 소통과 유연함으로의 방향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유력지 르 몽드는 4일(현지시간) 사설에서 "(마크롱의) 절대권력을 내세우는 권위적인 태도는 질서 확립도 못 하는 무능함으로 바뀌었고, 오만함과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위기를 고착화했다"면서 "통치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현 국면을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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