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지나간 것에 대해 되새김질하기

입력 2018-12-04 10:33:13 수정 2018-12-05 19:22:42

김주영 소설가·객주문학관 명예관장

김주영 소설가
김주영 소설가

전통 뒷간 배설물 농사 거름으로 써

마사이족은 집 벽에 소 배설물 발라

냄새 나지만 빛나는 가치 숨어 있어

지나간 것들 무작정 버리지 말아야

조선시대 후기에 외국인이 촬영한 사진 중에 똥장군을 지고 서 있는 한국인 농사꾼의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이 인상적인 것은 사람의 배설물이 담긴 용기를 등에 지고 있으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전혀 민망한 기색 없이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 세계로 진입한 지금은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볼 수 없게 됐다. 중세 유럽에서도 거리에 변기통을 가지고 다니며 빌려주고 돈을 받는 장사꾼이 있었다. 심지어 새벽이면 너도나도 배설물을 거리에다 내다 쏟아 도시 전체에 악취가 진동했다. 루이 14세가 즐겨 신었던 굽 높은 구두의 동기도 당시 길거리에 흩어진 오물을 피해 다니기 위한 것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배설물을 처리하는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미개하거나 허술하지 않았다. 절제와 효용성의 묘미에서 이탈한 적이 없었다. 궁중에서는 왕이 매일 아침 내놓는 배설물을 맛보는 어의가 있었다. 그 맛과 빛깔로 왕의 건강 상태를 검사하기 위함이었다. 배설물 속에 모든 병증의 원인과 진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 건축의 백미로 일컫는 병산서원의 만대루 왼쪽에는 우리나라 뒷간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대루가 개방된 공간으로서의 건축미를 자랑하듯 이 뒷간 역시 개방된 열린 공간을 자랑한다. 주거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어 지붕 없이도 악취가 주거 공간 주변까지 미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간 가옥에 존재했던 뒷간 대부분이 만대루 뒷간이 가지는 이러한 공간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재활용하는 현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화학비료가 없었던 조선시대 때 농사에 쓰였던 거름의 효용성도 동물의 배설물이 섞이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때는 우리의 농토가 지금처럼 황폐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름졌다.

우리가 미개한 사람들로 꼽는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기르는 소가 배설한 똥으로 그들 가옥의 벽을 바른다. 해충의 침입을 막고 맹수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동남아에선 코끼리와 짐승의 배설물을 거쳐 얻어낸 커피콩을 거두어 고품질의 커피를 얻어낸다. 우리가 반딧불이로 부르는 개똥벌레는 낮에는 습하고 따뜻한 소똥이나 말똥 속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와 암수를 찾아 활동한다. 그 개똥벌레는 급기야 반딧불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지방자치단체에선 축제도 열어 관광객들이 반딧불이를 보려고 전국에서 모여들어 밤이 되기를 기다린다. 냄새 나고 혐오스럽다고 내다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빛나는 가치를 되새김함으로써 얻어내는 성과다.

과거에 새마을사업의 성과에 집착하다가 모든 것들을 버리고 새 출발하자는 슬로건 때문에 우린 아주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민속 자산을 많이 잃어 버렸다. 프랑스의 베르사유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가 파리의 궁전을 버리고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화려하고 거대한 궁전에는 화장실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궁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파티가 열렸고 왕의 환심을 사려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먹고 마시고 춤추며 환락의 밤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들 왕족과 상류층도 어차피 사람이었고, 먹고 마셨으니 당연히 배설 욕구가 뒤따랐다. 궁전 주변은 그들이 내놓는 배설물 장소로 활용되었고, 낮이 되면 그들 배설물에서 풍기는 냄새로 가득 찼다. 왕이 의도했던 대로 궁전 자체는 깨끗해졌지만, 주변 환경이 배설물로 오염되는 비관적인 결과를 맞았다.

지나간 것, 그리고 버려진 것들 속에도 빛나는 보석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것이라 해서 무작정 버리거나 혐오스러운 눈길을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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