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고발을 시작으로 '미투운동'이 각계로 번졌다. 매일같이 터져나오는 성추행 고발은 우리 주변에 성범죄가 일상화돼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성범죄는 2만4천110건이 발생했고, 이중 성추행이 1만7천947건으로 약 75%를 차지했다. 낮은 신고율을 고려한다면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201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자 신고율은 5.3%수준이다.
성추행은 이처럼 '일상의 범죄'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출퇴근길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여성들은 일상의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만연한 성추행을 막으려면 '가해자'를 알아야한다는데서 출발한 것이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범죄임에도 우리는 '가해자의 얼굴'을 모른다. 대체 어떤 사람이 성추행을 저지르는 걸까? 흔히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사람, 혹은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는 남성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추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성추행범들은 이런 예상을 벗어난다.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는 의존증치료 클리닉에서 정신보건복지사로 일하며 만난 성추행범들의 통계와 사례를 바탕으로 성추행범의 유형을 분석했다.
◆성추행범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성추행을 막으려면 누가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알아야한다.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성추행범의 심리와 진짜 모습을 알려준다.
지은이 사이코 아키요시는 일본 도쿄에 있는 에노모토클리닉의 정신보건복지사다. 그는 매일 성추행범들을 만나며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데 놀란다고 말한다. 성추행범 중에는 고학력, 회사원, 기혼자가 많았고, 이들은 직장에서 성실한 직장인이자 집에서는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실제로 그가 12년간 만난 성추행범들의 데이터를 통해 추려낸 특징을 한 사람으로 표현하면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한창 일하는 기혼 남성'이었다.
성추행에 관한 오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욕때문에 성추행을 저지른다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성추행은 성욕이 아니라 지배욕때문에 발생한다는 것. 성추행범은 동의 없이 타인의 안전 영역을 침범하고 신체를 유린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이런 우월감은 특히 다른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계속해서 억눌려 있던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이 짜릿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성추행범 중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때 안정을 얻는다. 비뚤어진 지배욕은 모든 성범죄의 기반이다.
책은 성추행 대상에 대한 오해도 말한다. 짧은 치마처럼 흔히들 '섹시하게' 입은 여성들이 성추행 피해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성추행범들은 대상을 선정할 때 '신고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을 고른다. 외형에 집착하는 성추행범도 있지만 대부분 체포의 위험이 덜한 표적을 찾는다는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어른을 신고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이 성추행 범죄의 대상이 된다고도 말한다.
그는 성추행을 일종의 '중독'으로 바라본다. 성추행은 의존증이라는 병이며, 따라서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론이다. 중독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끊을 수 없다. 재판 날까지 성추행을 저지를 정도로 심각한 중독으로 본다. 이는 체포가 돼야만 그만둘 수 있어서, 체포됐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성추행범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체포되는 상습적인 성추행범들은 약물치료, 대화치료 등 집중치료를 통해 해결해야한다고 말한다.

◆성추행 부추기는 사회 바꿔야
책은 성추행범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되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성범죄자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존재고, 남성의 성욕을 풀어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이런 '인지 왜곡'은 사회에서 자기도 모르게 배워서 체화한 것이다. 그래서 성차별이 심한 나라일수록 성범죄도 많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성추행범의 치료도 필요하지만 사회가 바뀌어야 성범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성범죄가 발생하도록 부추기는 '야동', '인터넷 커뮤니티', '가벼운 처벌' 등에 대한 규제·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성추행범이 성인 동영상을, 특히 성폭력을 소재로 한 성인 동영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폭력적이고 차별적 묘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위험하고, 성추행범은 이런 콘텐츠를 자주 접하며 여성에 대한 오해를 쌓아간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표현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모두에게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성추행 상습범 중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이들이 있다. 지은이의 경우 일본 사례를 들었지만 우리나라 일부 커뮤니티에서도 불법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가해행위를 인증하는 등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성추행과 무고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시선도 지적한다.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면 "무고일 수도 있잖아"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방향부터 잘못됐다는 것.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여자가 꽃뱀이 아닌지 의심한다. 성범죄에만 예민하게 무고를 들고나오는 이유는,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로 인한 손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이 성범죄 피해를 상상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피해자가 많다. 반면 성추행 무고로 파괴된 남성의 인생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므로 더 현실적으로, 무게감 있게 받아들인다.
지은이는 성추행범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반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본다. 자신에게 반격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준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성추행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무고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에는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외면한 곳에 성추행범이 되는 본질이 숨어 있다. 254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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