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그 사람의 영혼이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향수'에서 한물 간 향수제조사인 주세페 발디니가 주인공인 장바티스트 그르누이에게 향수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한 말이다.
향수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나 분위기를 대변해준다. 첫 만남에서 살풋 불어오는 바람에 은은하게 묻어나는 향기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향수업계에서는 최근 '니치(Niche)향수'에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길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향수에서도 대중적으로 누구나 사용하는 향 대신 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대변해 주는 '니치향수'가 인기다.
◆향기로 나를 드러낸다
'니치향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니치(nicchia)에서 파생된 말로, 극소수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를 말한다. 조향사가 최상의 원료를 조합해 가공되지 않은 천연향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니치향수는 다양한 화장품 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브랜드보다는 주로 향수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고급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향수와 비교해 최소 2~3배, 최대 10배 이상 비싸지만 희소성이 높은 향수를 선호하는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으며 전체 향수업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니치향수는 여느 향수 제품보다 두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에 따르면 최근 세달간 니치향수 제품의 판매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이상 증가했다. 전체 향수제품 매출이 5% 증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신장율을 보인 것이다.
전국 롯데백화점으로 봐도 올 1~10월 동안의 니치향수 매출 신장률은 30.2%에 달해, 일반 향수 매출 신장률(8.6%)보다 3~4배 가량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작은데서 얻는 나만의 사치
니치향수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가격보다 마음의 만족을 중시하는 '가심비'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급 향수를 사용함으로써 나에게 작은 사치를 선물하는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명품 의류나 가방 등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리미엄 향수를 구매하는 일종의 경제 불황 속 작은 나만의 사치를 즐기는 '소확행' 심리가 반영된 일종의 '립스틱 효과'의 반영으로 보기도 한다. 의류나 가방 등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명품을 사는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리미엄 향수 하나로 쇼핑하는 기분을 즐긴다는 것이다.
'립스틱 효과'란 경제적 불황기에 나타나는 특이한 소비패턴으로, 소비자 만족도가 높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사치품의 판매량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 산업별 매출 통계에서 경제가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립스틱 매출은 오르는 기현상이 확인되어 경제학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천연향료를 사용하는 니치향수의 제품적 특성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최근의 패션·뷰티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진다. 기존의 향수들은 대체적으로 향이 강하고 인위적인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니치향수는 깨끗이 씻은 섬유에서 나는 냄세, 풀 내음, 방금 샤워하고 나온듯한 비누냄새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런만큼 남녀 성별 구분없이 쓸수 있는 젠더리스 제품이 강세다.
조아영(34)씨는 "사실 너무 강한 향이 싫어 향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니치향수를 접하고는 매일 향수를 애용하게 됐다"고 했다.
◆레이어링하는 재미도 쏠쏠
향수 마니아인 손혜정(37)씨는 요즘 향수를 섞어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손씨는 화장대가 아닌 현관에 향수를 진열해두고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다른 향을 뿌리는 등 자신만의 향을 만들어본다. 그는 "여성들이 시간·장소·상황에 따라 의상을 선택하듯 향수 역시 그날의 옷차림과 날씨, 만나게 될 사람 등을 고려해 조합하다보면 마치 내가 조향사가 된듯 묘한 즐거움도 있다"고 했다.
손씨처럼 두가지 이상의 향을 섞어 쓰는 것을 '레이어링(layering)'이라고 한다. 같은 계열의 향수를 겹쳐 사용해 더욱 풍부한 향을 만들거나, 무겁거나 가볍거나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단일 노트 향을 각기 다른 부위에 뿌려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형식이다. 니치향수의 장점 중 하나가 레이어링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향이 짙지 않고 부드럽다보니 두세가지를 섞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니치향수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영국의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이다. 조 말론은 니치 향수의 의의를 가장 잘 구현한 브랜드로 불린다.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는 매장 직원들이 고객별 맞춤 향기 스타일을 제안해 주는데, '프레그런스 컴바이닝' 시스템은 자신이 원하는 계통의 향수를 하나 고르면 그와 섞어 쓸 수 있는 향수를 추천해준다. 레이어링 시스템을 기본 콘셉트로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니치향수의 대표 브랜드로 딥디크, 펜할리곤스, 아닉구딸, 산타마리아노벨라, 바이레도 등이 인기다. 표경중 롯데백화점 대구점 화장품 담당자는 "모든 제품에서 나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니치향수의 인기도 계속 올라가며 시장규모를 키워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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