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스트레스에도 티 안 내는 고양이, 불안 상태 감별법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 얌전한 고양이를 실속 차리는 사람에 비유한 속담이 있다. 하지만 수의사로서 얌전한 고양이를 관찰해보면 사실은 다르다. '얌전한 고양이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마호(8살·페르시안)가 혈뇨와 배뇨장애로 내원했다. 순하고 먹는 걸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화낼 줄 모르는 얌전한 뚱냥이였다.
낯선 수의사가 채혈을 위해 앞발을 잡아당겨도 너그럽게 내밀고 바늘이 찔리는 순간에도 거부하지 않았다. 마호의 싫다는 표현은 그저 애잔하게 간호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돌리는 정도였다.
마호의 병명은 수컷 고양이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고양이 특발성 배뇨 장애증(FLUTD·feline lower urinary tract disease)'이었다. 주된 증상은 방광염과 요도협착에 의한 배뇨장애다. 수컷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라면 꼭 알아두어야 하는 질병으로 방치될 경우 급성 신부전으로 악화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긴급을 필요로 하는 질병이다.
마호는 요도협착이 심각해 요도 카테터를 장착하여 배뇨를 유도하며 4일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의사와 간호사는 입원 기간 내내 마호를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였고 입원실 주변의 소음과 조명조차도 신경 써야 했다. 마호의 얌전한 이면에는 두려움과 소심함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수컷 생식기는 체구에 비해 작고 요도가 가늘어 방광염 또는 요도염이 발생하면 요도협착이 잘 생기는 해부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고양이 특발성 방광염(FIC·Feline Idiopathic Cystitis)이 10세 이하의 고양이에서 FLUTD가 발생하는 가장 흔한 원인(60~70%)으로 밝혀져 있다. 방광 결석은 FLUTD를 발생시키는 원인의 10~20%를 차지하고, 세균감염에 의한 비뇨기 감염증은 신장 질환을 가지는 10세 이상의 나이 많은 고양이에서 다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FLUTD의 주원인인 FIC가 발생하는 이유는 불안, 두려움 등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방광염이 유발되는 고양이의 생리학적 특성 때문이다. 결국 스트레스에 민감한 고양이가 FIC(고양이 특발성 방광염)가 잘 발생하며 FLUTD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얌전한 고양이가 외향적인 성격의 고양이에 비해 스트레스 민감도는 월등히 높으므로, 얌전한 고양이가 FLUTD 발생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얌전한 고양이를 돌보는 집사들이 더 주의해서 고양이를 관찰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얌전한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실내 환경의 변화, 집안 가구의 재배치, 사료의 변경, 다른 고양이의 간섭이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또 화장실이 맘에 들지 않거나 가족의 생활 패턴이 달라지거나 느닷없이 야단 듣게 되는 등 다양한 상황들이 소심하고 얌전한 고양이에는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다.
보호자가 스트레스의 원인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얌전한 고양이의 불안 상태를 감별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고양이의 생활 패턴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얌전한 고양이가 일상 패턴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보호자는 고양이가 이미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이해하고, 평상시 고양이가 가장 편안 해하는 조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얌전하고 소심한 수컷 고양이가 배뇨 습관이 달라지거나, 화장실의 소변량이 줄고, 배뇨 시 통증을 호소하고, 생식기를 자주 핥는 모습이 보인다면 FLUTD를 강하게 의심하고 신속하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 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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