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정개특위의 딜레마

입력 2018-11-21 11:31:25 수정 2018-11-21 19:06:36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연동형 비례대표제'엔 암묵적 동의

국회 의석수 늘리자니 민심 무섭고

지역구 의원수 줄이자니 반대 거세

여건 잘 살펴 선거법 개정안 발의를

현재 국회에서는 선거법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달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개특위)가 설치되어 현재 선거법 개정안이 준비 중이다. 정치개혁의 최대 현안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지만 그동안 국회마다 설치된 정개특위는 특별한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정개특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많지만, 지금의 정개특위는 다른 때와는 좀 달라 보인다. 이번에는 선거제도 개편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어려운 것이 개편 방향에 관한 정치권의 합의인데, 이미 끝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난달 초에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정개특위에 합의하면서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을 위원장으로 내세운 것은 정치권이 이미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을 주문했는데, 여야 정당들이 이를 미루다가 마침내 여론에 밀려 수용한 것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실례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25%의 정당지지를 받고서 41%의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했고, 그전의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의 지지로 50%의 의석을 얻었다. 이 때문에 선거 후에는 어김없이 '승자 독식'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거대 정당들이 담합하여 기득권을 지켜왔는데, 이번에는 바뀔 모양이다.

물론 연말까지 정개특위가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 국민 여론이 의석수를 늘리는 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데는 반대한다. 그런데 의석수를 묶은 상태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하면 국회 표결에서 부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을 위해서는 지역구 의원의 숫자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당장 지역구를 잃게 되는 국회의원들이 거세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한 정개특위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국민들에게 별로 존경받지 못하는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자니 민심이 무섭고, 현재의 의석수에 맞춘 개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정개특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어쩌면 그래서 소수당 의원에게 선심 쓰듯 위원장직을 맡겼는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국민들은 비례대표 의원을 더 싫어한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앞장서서 막말로 정치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발전 정도를 생각하면 국회의원의 절반은 비례대표로 뽑아 그들에게 정책개발을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이미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그 이유는 공정한 대의와 더불어 정책정당의 필요성 때문이다. '독일 통일의 아버지'라 불리는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도 비례대표 의원이었다.

이제 도로포장이나 마을회관 건설 같은 지역현안은 지방의원들에게 맡겨도 된다. 국가정책을 고민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지역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국정은 공무원들에게 맡겨져 변화와 발전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주에 571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의석수 확대를 주장하여 정개특위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쪼록 정개특위가 그 시한인 다음 달까지 국민 여론과 정치 여건을 잘 살펴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발의해 주길 바란다. 과거 한나라 대장군 한신(韓信)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배수진을 쳐서 조나라를 함락시켰던 것처럼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큰 지혜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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