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
영국의 석학 로저 스크러턴(Roger Scruton)은 사회를 '우리 조상과 우리와 우리 자손이 이루는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 "좋은 것은 허물기는 쉽지만 쌓기는 쉽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치를 보전하여 후손들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다. 특히 좋은 것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책임이 포함된다.
간송미술관은 국내 최고 수준의 아름다운 가치와 철학을 실천해 왔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전 재산을 출연(出捐), 일본으로 반출됐거나 반출 직전의 국보급 문화재를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 전성우 선생 등 후손들은 작품을 팔기는커녕, 보존과 수복을 반복하면서 더욱 귀하게 만들었다. 가헌 최완수 선생과 그 제자들은 수천 점에 이르는 간송 작품들에 대한 학술적 논문과 에세이로 그 권위를 배가시켰다. 그들은 작품 보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존에 대해 높은 수준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미술품 보존, 수복 사업은 이제 블루오션 사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세월을 거치면서 체득한 노하우도 이제 곧 대구에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간송미술관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가 명칭을 '대구간송미술관'으로 확정 짓는 일이었다. 간송미술관은 정치적 의미가 아닌, 높은 수준의 보수적 가치와 이념을 지닌 자존심이 매우 강한 집단이다. 다른 곳으로 간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간송미술관이 대구로 오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대구가 문화예술의 도시이면서 대구 시민들이 장시간에 걸쳐 형성해온 가치와 이념에 잘 부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는 당대인의 것만이 아니다. 돌아가신 우리 조상들 것이기도 하고 커가는 아이들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송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그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이념과 가치, 그림을 통한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창의적 발상까지 가져오는 것이다. 이는 대구의 문화 품격을 끌어 올리는 한편,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문화 관련 기관들도 간송미술관과의 교류와 친선을 통해 자신들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돌이켜보자. 19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 발표 당시 논란이 일었다.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만일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아마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는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문화예술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싶다.
개발도상국에는 2차 산업 공장을 짓는 것이 좋지만, 선진국이나 그 대열에 합류하려는 사회는 첨단산업과 미술관을 지으려 노력한다. 뉴욕은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때문에 품격을 얻었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 역시 '굴뚝 없는 공장'의 대명사다. 아부다비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한 데 이어 루브르 미술관 분관 유치에도 건립 비용을 제외하고 12억6천7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을 프랑스 정부에 지불하기로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멀리 보자고 제안 드린다. 사랑과 이해로 응원해 주시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꼭 보답하겠다고 다짐한다. 아직 미심쩍어하는 분들도 진심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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