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영웅과 천재의 도시

입력 2018-11-14 11:29:16 수정 2018-11-14 20:09:01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1986년 5월 12일 부산고등법원이 문을 열었다. 그 전까지 부산, 경남사람들의 항소심은 대구고등법원에서 했다. 부산고법이 문을 열던 날은 대구가 쪼그라지는 상징적 첫 날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 슬슬 기운이 빠지다가 이날 자로 완전히 바람 빠진 도시가 되고 만다. 항구를 낀 도시는 이길 수가 없다. 미국도 수도 워싱턴보다는 뉴욕이 더 큰 도시이며 일본의 제이, 제삼 도시 오사카, 요코하마도 항구도시다. 이제 대구는 부산은 물론 인천에 이어 울산보다도 경제력이 떨어지는 곳이 되고 말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 먹을 것이 있다고 한다. 대구가 아무리 망했다고 해도 '배지기할 능력'은 남아있다. 대구가 갖고 있는 전통 있는 인프라와 대구사람들의 불굴의 정신 있다. 일본 오이타(大分) 현의 유후인(湯布院,由布院)이 휴양과 온천의 도시로 이름을 떨치다가 어느 날부터 같은 현의 뱃부(別府)에게 손님을 다 빼앗기고 만다. 대형으로, 현대식으로 만든 뱃부 온천들에게 진 것이다. 그러나 유후인은 역발상으로 기사회상을 한다. 작으나 조용하고 아담스런 고급스런 전원도시로 테마를 바꾼 뒤 그들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한다.

몇년 전 일본인 교수 한 사람을 대구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안내를 한 적이 있다. 차 속에서 할 말도 딱히 없어 보이는 풍경들을 설명하다 대구공고 앞에 이르러 "저 곳이 전두환 대통령 졸업한 학교"라고 했더니 흠칫 놀라는 시늉을 했다. 사대부고 앞을 지나며 "여기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범학교 때 다니던 건물."라고 하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진짜 놀란다. 손가락을 더 뒤를 가리키며 저 건물 뒤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고교 모교가 있었다."라고 했더니 많이 놀란다. 동성로쪽을 향해 저 곳에는 "박근혜 대통령 출생지"라고 안내하자 공황에 빠진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구는 영웅과 천재의 도시다.

대구에 '문화관광' 코스를 만든다. '동부 코스'는 영천으로 가 소설가 하근찬, 가요인 왕평을 소개한다. 이어 경주로 가면서 건천 모량의 박목월 생가를 둘러보고 성건리의 김동리 생가도 소개를 해준다. '북부 코스'는 성주 가서 백년설의 발자취를 본 뒤 김천 대항면을 지나며 가요인 고려성, 나화랑 형제의 생가를 둘렀다가 안동의 이육사, 청송의 김주영 그리고 영양의 조지훈, 이문열 생가를 방문한다. '중앙' 코스는 일단 청도로 가서 이호우, 이영도 남매의 고향을 둘러본 뒤 시내로 들어온다. 김광석(동도), 남일해(대건), 여운(대륜), 신세영(영남), 도미(개성), 손시향(경북), 이상화, 현진건의 발자취를 밟아본다. 향토 출신의 입담 좋은 가요, 문학, 인문 학자를 섭외하여 이 천재들을 소개하면 대구는 세계의 문화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옛 두류정수장 터에 왜 객지 화가를 모시려 그렇게 애를 썼는가? 그곳은 대구 문화인들을 기리고 키우는 공원을 만들어야 된다. 대구문학관을 옮겨 확대하고 미술과 가요기념관을 신설하여 근대화와 피난 시절 대구에서 최초로 있었던 행사와 그 주인공들 그리고 자료들, 그리고 번창기 문화의 모습과 그 흔적들을 하루 종일 공연하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원을 반드시 만들어야 된다. 딴 도시는 그런 자료가 없고 역사적 사실이 없어 할레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계획대로 대면 대구는 큰 돈 벌게 될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