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이야기와 치유의 철학]실스마리아를 아세요?

입력 2018-11-13 15:43:29 수정 2018-11-14 16:00:06

수원대 교수

더 이상 젊지 않은데 젊음의 특권에 집착하는 것은 젊은 것도, 젊어 보이는 것도 아니지요? 그저 겉돌고 있는 겁니다. 한 살 한 살 나이 먹음에도 나이 먹지 못하는 이는 젊음에서도, 늙음에서도 소외되어 가고 있습니다. 젊음에 집착하여 젊음을 선망하거나 질투하는 그에게 젊음은 모른 척을 하거나 왕따하고, 나이 들면서도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에게 나이는 문을 닫아걸고 받아주지 않을지 모릅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마리아처럼.

실스마리아,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원래 실스마리아는 니체에게 영원회귀(永遠回歸)의 영감을 주었다는 바로 그 산입니다. 그런데 영원회귀라는 게 뭐지요? 회귀이니, 일단은 영원한 반복이겠습니다. 다시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다시 꽃이 피고 꽃이 지면서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반복, 그 회귀는 굴러떨어질 바위를 또다시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그것처럼 고단하기만 한 반복은 아닙니다. 영원회귀의 핵심은 '변환'입니다. 니체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가 지적했듯 영원회귀는 영원한 반복 속에서의 영원한 변환입니다.

젊은 날, 맹랑하고 이기적인 역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한 배우의 이야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보셨습니까? 니체가 영원회귀의 사상을 깨우쳤다는 그곳이 배경인 영화입니다. 거기에서 펼쳐지는 실스마리아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합니다. 영화는 그곳에서 글을 쓰는 운둔형 작가 빌렘이 거기서 세상을 떠난 소식으로 시작하는데, 죽음 혹은 자살까지도 영원 속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있고, 파괴와 창조가 둘이 아닌 실스마리아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고, 사라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곳이나 영원으로 흐르는 순간의 문 같습니다.

실스마리아의 꽃은 말로야 스네이크(Maloja Snake)입니다. 어느 날 말로야 고개로 구름이 몰려오면 구름은 뱀처럼 뭉실뭉실 스멀스멀, 실스마리아 전체를 휘감고 돕니다. 구름이 원형의 뱀이 되어 돌고 도는 겁니다. 영원 속에서 시간이 돌고 계절이 돌듯이.

말라야 스네이크는 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마리아(줄리엣 비노쉬 분)는 18세에 '말로야 스네이크'란 작품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20년 연상의 여상사를 유혹해 자살에 이르게 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파괴적인 인물 시그릿을 연기했습니다. 그녀에게 '말로야 스네이크'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젊음의 도발을 그린 작품입니다.

20년 후 그녀는 리메이크되는 연극에 출연 제의를 받는데, 이제는 20년 전 그녀가 철저히 무시했던 그녀의 상대역 헬레나입니다. 시그릿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나서 자살에 이르는, 나이 든 여인 헬레나 말입니다.

그녀는 어쩐지 헬레나 역이 싫습니다. 헬레나의 대사를 외울 때마다 그녀의 열등감도 터져 나옵니다. "그들이 네 얘기를 하고 네 칭찬을 늘어놓는 건 날 짓밟는 데 널 이용하는 거지." 대사 연습을 하면서 그녀는 못 하겠다고, 거지 같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대사 연습을 할 때마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거지요? 그녀는 자신감의 원천이었던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불안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헬레나의 말을 받는 시그릿의 대사는 뱀처럼 차갑습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약한지에 대해 내게 털어놓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고. 당신이 밤잠을 설치는 이유! 그건 욕망, 날 향한 욕망! 채용한 순간 알았지만 재미있어서 내버려뒀어요."

아무나 젊음의 시기를 파괴적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파괴적인 젊음에 끌리는 것도 아니지요? 그런 맹랑한 젊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 시그릿은 그저 생존을 위해 상사를 이용한 교활한 계집애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마리아는 시그릿에게 휘둘립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시그릿을 이해하고 사랑하니까요. 그녀는 관계를, 사랑을, 사람을 파괴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시그릿의 젊음과 자신감에 흔들려 헬레나가 되지 못합니다. 당연히 헬레나 역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나이 든 헬레나가 매력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 욕망을 따라가는 젊고 이기적인 시그릿에 집착하고 시그릿에 끌려 다니느라 헬레나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삽화 권수정
삽화 권수정

헬레나 역을 해야 하는 마리아에게 헬레나는 그저 시그릿에게 무시당하고 자살이나 하는 못난 인물이지만 헬레나의 매력을 본 사람에게 헬레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비서이기도 하고 말동무이기도 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은 누구보다도 헬레나의 매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헬레나는 한순간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사라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말로야 스네이크를 바라보며 사라진 작가 빌렘처럼,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진 그녀 자신처럼.

발렌틴은 문득문득 젊음의 특권에 집착해서 헬레나의 매력을 보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구역질을 느끼며 마리아와 대립합니다. 글도 물체와 같아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시그릿은 잔인하지만 헬레나는 인간적이에요…. 그녀는 파괴적이란 것을 알면서도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에요."

어쩌면 헬레나가 '교활한 계집애'를 사랑한 것은 파괴의 힘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신은 관습적으로,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사는 게 문제가 없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을 깨버리고 돌연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을 이해하십니까? 헬레나가 시그릿을 사랑했던 것은 그녀가 바로 그 파괴의 힘을 알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인도에서 가장 많이 섬김을 받는 신은 시바, 파괴의 신입니다. 파괴는 신입니다. 파괴가 없이는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으니까요.

'말로야 스네이크', 이 연극은 철저히 마리아를 위한, 마리아의 헬레나를 위한 연극이었습니다. 젊음에 집착해서 영원한 시그릿으로 남고 싶었던 마리아만 그 사실을 몰랐을 뿐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헬레나의 매력은 감춰져 있습니다. 그녀가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마리아를 떠나며 사라진 발렌틴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헬레나의 매력을 발견하여 새롭게 변환되기까지 영원의 반복은 계속되겠지요?

아무리 좋은 것도 집착하면 병이 됩니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시절, 사랑, 사람, 거기 나의 삶의 매듭이 있고 숙제가 있습니다. 그 매듭을 풀 때까지 생은 반복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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