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으로 변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어나고 있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해 리모델링하고, 그 안에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 전시실과 도서실 등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구한말 일본의 조선 침략 방식은 1592년 일본의 조선침략(임진왜란)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총칼을 앞세웠다면, 근대 일본은 총포와 더불어 자본이라는 신무기로 조선을 침략했다.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조선은 전국 각지의 성(城)을 개보수해 총칼로 맞서고자 했다. 외세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쳐들어오는 데 조정은 여전히 옛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대구 사람들은 달랐다. 패러다임 변화를 정확히 이해했고, 자본이라는 외세의 신무기에 대응하자면, 자본이라는 신무기로 맞서야 함을 알았다. 1907년(융희 1) 2월 대구 사람들이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이 그것이다.
나라가 일본에 빌린 돈을 갚자며 대구가 일어섰고, 전국이 들불처럼 일어섰다.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치열한 독립 투쟁이었다. 그러니 국채보상운동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은 역사적 자산을 가꾸고, 미래를 여는 작업이다.
중앙도서관의 출발은 1919년 경북도청 안에 있던 뇌경관이었다. 몇 차례 이전과 개보수, 이름 변경을 거쳐 1985년 12월 현재 자리(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중 두 번째로 설립된 도서관이고, 2017년 한 해 이용자만 160만 명이다.
100년 세월을 쌓아온 만큼 보존 가치가 높은 자료들도 많다. 독립신문 영인본,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신문, 순조 임금이 하사한 '어정대학유' 등. 무엇보다 중앙도서관 자체가 대구 근대역사의 한 축이다. 그러니 만약 중앙도서관을 없앤다면 근현대 대구 역사의 한 축을 허무는 것이 되고 만다.
도서관은 고대부터 대표적인 정보 저장소이자,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을 도모하는 문화시설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열람실 중심에서 벗어나 자료실, 복합문화시설로 거듭나고 있다. '라키비움'(Larchiveum), 즉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을 합한 것과 같은 공간과 역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역사 자산인 국채보상운동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리모델링 이후 새롭게 탄생할 시설은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합당하다.
2017년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대구지역 공공도서관 1관당 연평균 이용자는 35만8천900여 명이다. 박물관 1관당 연평균 관람자는 7만6천400여 명이다. 서울, 부산, 인천, 광주도 양상은 거의 비슷하다. 시민들이 박물관보다 도서관을 친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한 뒤 그 명칭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하고,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과 중앙도서관 기능이 그 안에서 함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럴 리 없겠지만 하나의 역사적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역사 자산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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