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칼럼] 숨겨진 기도

입력 2018-10-26 11:07:52

전쟁 시기였다. 거리는 온통 애국의 물결로 일렁였고, 분연히 일어난 젊은이들은 열의로 충만했다. 전선으로 나가는 군홧발은 북소리처럼 우렁찼다. 그런 가운데 내일이면 전선에 투입될 장병들과 가족들, 막 전장에서 돌아온 영웅들이 이 교회에 모여서 환송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사님의 길고 감동적인 기도가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할 즈음, 긴 머리를 늘어뜨린 한 사내가 교회 복도를 조용히 걸어와 설교대에 섰다. 몰입한 목사님은 눈을 감은 채 기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리 조국과 국기의 수호자이신 오 주 하느님 아버지, 저희 무기를 축복하시고 저희에게 승리를 주소서!"

그 때였다. 형형한 눈으로 교회 안을 흩어 보던 사내는 목사님을 옆으로 물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옥좌로부터 파견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여러분의 목사님이 바친 기도를 들으셨다. 여러분이 방금 들은 그 기도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가 설명할 테니, 들어보고 그대로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 뜻대로 해주실 것이다. 방금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

"늘 자애로우시고 관대하신 우리 모두의 아버지시여! 우리 귀한 병사들을 지켜주시고, 이들이 조국을 위해 싸울 때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며, 이들에게 은총을 내리시고 전투의 날 위급한 순간에 방패로 막아주시고 전능하신 손으로 감싸주시고, 힘과 자신감을 북돋아주시고 잔학한 습격에도 끄떡없게 하시며, 이들이 적을 쳐서 무찌르도록 도우시어 이들과 이들의 깃발과 조국에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주시옵소서."

사내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기도 뒤에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말해지지 않은 기도도 함께 들으셨다. 여러분이 말로 바쳐 올린 기도 안에 숨겨진 그 기도를 여러분에 알려주라고 주님께서 명하셨으니 들어 보아라."

"우리를 도우시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포화로 저들의 누추한 집들을 잿더미로 화하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죄 없는 과부들이 비통에 빠져 가슴 쥐어뜯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이 집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흙바람 이는 황폐한 땅을 떠돌게 하소서.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저희를 위하여 저들의 희망을 말라붙게 하시고, 힘겨운 인생길에 눈물을 흩뿌리고 다친 발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적시게 하여 그 발걸음을 무겁게 하소서.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도우심을 청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변함없는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사랑의 원천 하느님께 사랑의 정신으로 이 기도를 바치옵니다, 아멘!"

사내가 물었다. "여러분이 바친 기도의 실상은 이러하다. 그래도 여러분이 바친 기도가 이루어지길 원하는가? 말해 보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사자(使者)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대개 동화작가로 알려진, 미국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The war prayer'를 줄여서 옮겨 보았다. 우리가 기도를 말로 표현할 때, 거기에는 표현되지 않은 숨겨진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가. 그 기도에 숨겨진 부분은 무엇인가. 주어진 일상을 전쟁터로 착각하면서 전사(戰士)의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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