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혐오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입력 2018-10-25 18:59:07 수정 2018-10-25 19:58:23

장성현 사회부 차장
장성현 사회부 차장

마치 연상 퀴즈를 보는 것 같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둘러싼 온갖 '썰'들을 보면 그렇다. 사소한 '클루'(clue·단서)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증거가 되고,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로 증폭된다. 증오의 대상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수들이다.

'가해자 김성수는 한국인이 아니라 조선족이다.' 사건 발생 후 가장 먼저 증오의 대상이 된 건 애꿎은 '조선족'이었다. 김 씨의 게임 ID가 '한자'(漢字)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는 수법이 딱 '조선족'이라는 식이다.

온라인에는 조선족을 혐오하는 글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선족들 다 추방해야 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경찰이 "김 씨는 조선족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그러나 조선족의 범죄율은 결코 내국인보다 높지 않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5년 인구 10만 명당 내국인 범죄자는 3천369명이지만,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은 1천858명에 그쳤다. 국적별 인구 10만 명당 강력 범죄자 수도 163명으로 16개국 중 9번째였다.

김성수와 관련된 모든 클루는 혐오의 증거로 활용된다. 김성수의 목에 있는 타투(tattoo·문신)도 그랬다.

뒤늦게 타투 중 기본 문양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잔혹한 범죄자가 '문신충'이라는 낙인이 찍힌 후였다. '문신=범죄자'라는 공고한 편견이 힘을 보탠 덕분이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남성 혐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는 입에 담기 힘든 게시물이나 댓글이 넘쳐났다. 사건 현장 사진에 빗대 '젓갈 냄새 진동하는 X국 김장 현장'으로 조롱했고, 김칫국물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 사진에 '가해자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줬다' , '푹 익은 20대라 그런지 좀 짰다' 등의 모욕이 난무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도 고개를 쳐들었다. 김성수 측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와 100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실제로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강력 범죄자는 68.2명이지만 정신질환자는 33.7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고 심신미약으로 감형받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최근 3년간 우울증 등 정동장애로 처벌이 감경되거나 면제된 사례는 45건에 불과했다.

심신미약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적인 판단이 아니라 범행 시의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과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결과를 일으킨 원인이 설명돼야 안심한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나 결과를 접하면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속인을 찾아가 조상님의 묏자리 핑계라도 들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상식을 넘어선 잔혹한 사건을 접하면 원인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 대상은 반박할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다. 그 바탕에는 혐오가 도사리고 있다. 혐오는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인 다양성을 해친다. 폐쇄적, 배타적인 사회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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