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검안기록을 통해 당시 살인사건 수사과정과 당대인들의 삶을 살펴보는 책이다. 그들은 어떻게 죽였으며, 왜 죽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수사기법과 수준, 욕망과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조사관이 현장에 출동해 시신을 검시하고, 관련자들을 취조한 뒤 그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다. 검시결과와 함께 사건 관련자들을 취조해 기록한 보고서가 '검안(檢案)'이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는 500여종의 100년 전 검안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 책이 소개하는 내용은 그 중 일부다. 대부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한 것이다.
◇ 조선시대 살인사건, 어떻게 수사했을까
100여 년 전 살인사건 조사에서도 심문과 자백뿐만 아니라 법의학 증거가 중요했다. 사건이 발생하면 시체를 샅샅이 살폈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는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이 많아 법의학 지식도 함께 발전했다.
시체는 사건 발생 지역에 그대로 두고 검시했다. 부패가 빠른 여름철에는 신속한 조사를 위해 조사를 맡은 지방관의 출발과 도착 일정까지 상세히 보고했다. 살인사건은 통상 두 차례 조사를 실시했는데 초검관과 복검관은 각각 조사를 지휘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1차와 2차 조사결과가 같으면 사건을 종결했지만 의심이 갈 땐 3차 혹은 그 이상도 조사했다.
검안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검시 보고서 '시장(屍帳)'은 시체 상태를 매우 상세하게 묘사,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검시는 지금처럼 해부하는 게 아니라 외상과 색(色)을 주로 살폈다. 사인에 따라 외상의 모양이나 색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패가 심해 검시가 불가능하거나 사대부 부녀자들처럼 죽은 사람을 두 번 욕보인다고 여겨 면검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물론 의혹이 많을 땐 면검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평범한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생생히 기록
검안에는 오늘날의 녹취기록 같은 심문기록인 '공초(供招)'가 포함돼 있다. 살인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심문했는데, 아전들이 모든 진술을 구어체 그대로 기록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당대 소민의 목소리가 아전의 손을 통해 생생히 전해지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검안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강도나 절도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성(혼자 사는 과부, 외지에서 왔거나 가난해 남의 집에서 기식하던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 간의 다툼에 따른 살인뿐만 아니라 향촌의 양반 가문, 계나 두레 같은 평민들의 상호부조 조직 등 다양한 이익 집단들 간에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 두려움과 멸시의 낙인이 된 '용천뱅이'
오늘날 한센병으로 불리는 나병은 조선시대에는 나풍, 대풍창, 용천뱅이 등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이 병은 두려움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1638년 청주사람 박귀금은 나병에 걸린 아버지를 산속 초막에 내다 버린 뒤, 불을 질러 살해했다. 아버지를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살해할 정도로 나병은 두려운 병이었다.
1690년 경기도에 사는 최효선의 아내는 나병에 걸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주했다가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나병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멀리해야 할 무서운 질병이었다.
1899년 겨울,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하루 사이에 두 사람이 살해됐다. 김판술의 6세 아들 김왜춘과 이웃에 사는 43세 이여광이었다. 나병을 앓고 있는 이여광이 6세 아이를 납치해 배를 갈라 간을 빼 먹었음을 확인한 아버지 김판술이 복수를 위해 이여광을 살해하고, 그 간을 빼낸 것이었다. 당시 민간에 사람 간이 나병 치료에 좋다는 헛소문이 퍼져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 죄 지은 딸을 제손으로 죽인 어머니
1901년 11월 강원도 양구에서 남편이 방에서 먼저 목이 졸려 죽고, 며칠 뒤 아내가 길에서 목이 졸려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조사한 양구 군수는 "남편과 살기 싫은 아내가 남편을 죽였고, 이 사실을 안 친정어머니가 딸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조선의 지배이념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딸이 사위를 살해했다는 소식에 친정어머니는 부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딸을 패륜으로 규정하고 단죄했다. 그는 친딸을 죽였다는 죄책감보다는 패륜을 응징함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회복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사건을 조사한 양구 군수는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죄상을 보면 영원토록 갚을 길이 없고 천지에 용납할 길이 없습니다. 이에 친모가 그녀를 묶어 끌고 가서는 목 졸라 당겨 천만번 참륙할 몸을 죽여 그 죄를 스스로 갚았으니 법에 의거하여 죽이지 않고, 사사로이 죽인 것이 애통할 뿐입니다. (중략)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일 만하다 할 것이요, 길 가는 사람들도 누가 통쾌히 여기지 않겠습니까?"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자신의 딸을 죽이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행해야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일 수 있다는 당대인의 감정체계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 일상의 폭력과 인륜의 역설 드러내
이 책은 총5부, 15개 사건으로 구성돼 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살인, 향촌의 권력자들의 횡포와 이에 따른 피해, 질투와 추문을 견딜 수 없어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죽였다고 발뺌하는 토호, 세상의 변화와 함께 닥친 종교와 이와 관련한 죽음 등 여러 살인사건의 원인과 조사과정을 통해 말기 조선사회를 보여준다.
지은이 김호 교수는 "소민들의 진술과 증언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100년 전 조선 사람들은 지배계층의 이념이었던 성리학적 가치관에 충실하려고 했다.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군자와 거리가 멀었던 하층민들, 특히 여성들은 인간이 되기 위해 더욱 강한 열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한다.
▷ 지은이 김호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과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재 경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로 있다. 400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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