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촛불집회 후 공화주의가 시대정신
'갑질'근절 '미투'운동 사회 공감 형성
정치권 능력'감수성 기대에 못 미쳐
당파적 관점만 주장 땐 사회 해체돼
지금부터 2년 전인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의 물증으로 태블릿PC가 언론에 공개되자 "이게 나라냐"는 국민적 분노 속에서 촛불집회가 불붙었다. 촛불집회는 한 달 보름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의결을 이끌어냈고, 그 두 달 후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전 세계가 놀랐던 대한민국의 촛불집회가 불과 2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촛불집회가 과연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촛불 혁명'으로 평가되고 기억될지 알 수 없지만,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 촛불집회는 분명 민주주의의 신장에 기여했고 많은 이들이 이를 주목하고 있다. 이제 최고 권력자를 파면한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은 아무도 꺾을 수 없고 대통령도 함부로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성찰은 부족한 듯하다.
서양의 공화주의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민주주의와 더불어 다양한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 왔다. 거칠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비교하자면, 민주주의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견제하는 원리이고 공화주의는 모든 국민을 위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공화주의적 법치는 범죄자의 권리까지도 존중한다. 이런 맥락에서 촛불집회가 공화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태극기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포함한 모든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신으로 성숙해야만 한다.
촛불집회 이후 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는 분명 공화주의적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으로 '갑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들 수 있다. 이제 국가권력은 적극적으로 '갑질'의 근절, 나아가 사회적 부조리를 해소할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질적 성장을 예고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투'운동도 해석된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강압적 관계는 근절되어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갈 정치권의 능력과 감수성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공화주의적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협치를 통해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만 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급급해서 제 할 일을 않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거대 정당의 '정치적 갑질'을 막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겠다. 과거에는 행정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공정성과 다양성을 강화하는 정치적 공화주의가 시대정신이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당파적 관점만을 주장한다면 사회는 분열과 대립 속에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120년 전에 발생했던 1898년의 만민공동회 사건을 통해 촛불 정신을 재해석할 수 있겠다. 그해 11월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서울 시민들은 23일 동안 철야로 장작불을 피워 놓고 의회 설립을 주장했다. 당시 국왕이었던 고종은 공화주의자들이 왕권을 위태롭게 한다고 판단하여 만민공동회를 무력으로 해산했고 이승만을 비롯한 주동자들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완전히 꺼진 것만 같았던 '장작불 집회'의 정신은 그 후 1919년의 거국적 3·1운동과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방 후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으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촛불 정신도 이처럼 성숙한 민주공화국의 토양이 되어야겠다. 그것이야말로 공자가 강조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