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 불법 대리수술 "대구경북도 예외 아니다"…폭로 이어져

입력 2018-10-24 05:00:00

집도의 대신 절개하고 봉합하고…전문병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온통 횡행

대구경북에서도 의료기기 판매 영업사원의 불법 대리수술이 만연하고 있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매일신문DB
대구경북에서도 의료기기 판매 영업사원의 불법 대리수술이 만연하고 있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매일신문DB

의료기기 판매 영업사원의 불법 대리 수술로 전국적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구경북에서도 대리수술이 만연하고 있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올해 초까지 외상·골절전문 의료기기 도매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던 A씨는 "대구경북에 있는 정형외과병원 10곳 중 9곳에는 영업사원이 집도의와 함께 수술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A씨가 근무한 곳은 세계적인 의료기기장비 제조사의 장비를 납품하는 도매업체다.

2013년부터 5년 간 해당 업체 영업사원으로 근무한 A씨는 입사 후 10개월 동안 의료기기 사용법과 수술실에서 역할 등을 배운 뒤 수술실에 투입됐다.

그러나 A씨는 실제로 수술을 하거나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이미지 트레이닝만 한 채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A씨가 4년여간 수술실에 들어간 병원은 지역 대학병원 2곳을 포함해 무릎관절 병원과 정형외과 전문병원 등 20곳이 넘는다.

A씨에 따르면 대구의 의료장비 판매업체들은 권역별로 나눠 병원을 출입했다. 그는 "하루에 적게는 2회, 많게는 4회 정도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제지없이 수술실에 들어가…마구 수술

정장 차림의 영업사원들은 탈의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뒤 자연스럽게 수술실에 투입됐다. 수술실을 출입하는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들은 수술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어시(어시스턴트)'로 불렸다.

수술 과정에서 장비나 기기 사용법에 대한 조언 정도를 하는게 정상이지만, 사실상 수술을 주도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주로 골절 수술이나 인공관절 전치환술 등에 사용되는 이식재료 등을 납품하며 수술에 함께 투입된다.

A씨는 "영업사원은 수술 전반에 관여한다"고 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환부를 소독하고 주변 신체에 수술포를 덮는 일 뿐 아니라 수술 준비가 끝나면 손을 닦고 집도의와 수술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본격 수술에 들어가면 절개한 환부에 고정기를 넣고 수술 부위를 벌려 집도의의 시야를 확보해 준다. 또 수술 기구로 이물질을 흡입하거나 흐르는 피를 지혈해 조직을 깨끗하게 잘라내는 도구까지 직접 사용한다고 했다.

심지어 절개한 환부가 크지 않은 경우에는 직접 봉합까지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사실상 의료진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A씨는 "이식자재를 사용하는 수술을 하고 있는 대구지역 정형외과 중 상당수가 영업사원의 불법 대리수술을 당연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요즘은 2개월 정도 간단한 교육 후 수술실에 들어가는 영업사원도 많다"고 주장했다.

◆경북 지역 중소도시는 더욱 의존 심해

경북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중소도시의 경우 수술 건수가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수술 경험이 많은 영업사원들에게 더욱 의존한다는 게 전직 영업사원의 설명이다.

경북에서 활동했다는 전직 영업사원 B씨는 "중소도시 정형외과병원의 경우 영업사원과 집도의가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집도의가 환부를 절개한 후 손을 놓고 있거나 어시가 모든 수술 상황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씨는 안동과 영주, 경주, 포항 등 경북 지역 중소도시를 돌며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B씨는 "경북 동북부 지역의 병원 10여곳에 들어갔다. 오전에 안동에서 수술을 하면 오후에는 영주에 들르는 식"이라며"수술은 환자와 의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수술 참여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건 결국 '돈'과 '시간' 탓이다. B씨는 "수술 건수에 비해 의료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정형외과는 수술이 급한 환자가 많아 영업사원이 수술을 돕게 된다"면서 "영업사원이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각 병원들은 하루 수술건수의 20%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법 대리 수술이 판치지만 대책 마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영업사원이 수술실 밖에 마련된 '참관수술실'에서 사용방법을 설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 문제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관행"이라면서도 "수술 기구가 너무나 다양하고, 전자제품처럼 도중에 중단해 AS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기구의 보다 정확한 사용법을 아는 영업사원의 역할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구시 관계자는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확인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다음달 초에 병원과 약국 등 40곳을 대상으로 합동점검을 벌여 의료법 위반 실태를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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