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대한 왜곡된 시각 드러난 전화 한통
"피해액 가지고 언론플레이하느냐?"
영덕군이 태풍 콩레이로 물 폭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9일 본지를 통해 피해 예상액이 보도되자 중앙부처로부터 영덕군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모두 합쳐 200억원 정도 된다는 보도였다. 영덕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피해액 60억원이 넘어야 하는데 3배나 넘는 수치였다.
이 수치를 선뜻 믿지 못해 걸려온 전화였다.
단순한 확인 전화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이번 영덕 수해에 대한 무관심이나 왜곡된 지방 비하 시선이 담겼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편으로는 태풍 콩레이가 동해상을 빠져나가면서 부산·울산·포항 등 인구가 많은 지역의 피해 상황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으니 '시골' 사정에 어두웠다는 점도 이해는 간다.
인구 3만8천 명,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35%에 육박하는 영덕에서 다들 대피하기 바빴던 지경에 당시 상황을 유튜브나 방송사에 재빠르게 제보할 사람도 없었으니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언론플레이라니…'. 기자는 이를 기사화하려 했지만 영덕군 관계자가 만류하기까지 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피해 초기 영덕군의 추산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영덕군은 1991년 태풍 글래디스 때 328㎜의 기록적인 폭우로 193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이번 콩레이는 영덕에 이달 5, 6일 이틀 동안 314㎜의 비를 뿌렸다.
사실 이번 태풍 콩레이로 영덕보다 비가 더 많이 온 곳은 포항 북구 죽장면 하옥리로 479.5㎜나 됐다. 영덕과 맞닿은 포항 북구 죽장면 향로봉(해발 932m)과 영덕군 달산면 팔각산(632m) 사이 계곡물은 북으로는 영덕 오십천으로 흘러 이번 범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집과 논밭이 잠기고 길이 끊기고 산사태에다 배도 떠내려갔다. 임시 대피자만 2천200명이다. 중소기업 10여 곳도 공장이 잠겼다. 침수 차량도 300대 정도로 집계됐다. 인구 3만8천 명의 작은 시골에 인구 절반 가까이가 몰린 주요 3개 읍면 소재지가 완전히 초토화됐다.
이 때문에 피해액 200억원 이상이라는 수치는 영덕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고참 공무원들의 축적된 현장 경험과 상황, 자료를 종합해 추산한 것으로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피해 상황은 재난관리시스템에 입력 후 정부 실사가 뒤따른다. 거짓말을 하거나 언론플레이할 이유도 없다. 23일 현재 잠정 집계된 공공 부문 피해액 184억원, 민간 부문 피해액 140억원 등 300억원이 넘는다. 군의 판단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닌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영덕 피해에 대한 국민 관심도 정치권의 관심도 거의 무시 수준이다. 피해 2주가 지나면서 자원봉사자도 급감해 군청 공무원들이 주말까지 피해 현장에서 청소와 수리에 투입되고 있다. 성금도 포항 지진의 5% 수준이다. 관심은 고사하고 되레 태풍 피해 초기 인터넷 뉴스 댓글에 '대게 바가지 씌우더니 고소하다. 앞으로 바가지 씌워 피해 벌충하라'는 식의 비아냥이 등장하기도 해 가뜩이나 힘든 영덕을 아프게 하고 있다.
"서울이었다면…" "호남에서 이랬다면…" 하는 말도 들린다. 설마 그랬겠느냐마는 설마가 사람 잡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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