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들의 고민 "생활비가 필요합니다."

입력 2018-10-23 20:00:00

1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1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60+ 시니어일자리한마당'에서 구직을 원하는 노인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부산시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니어에게 취업정보와 취업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이 행사에는 115개사 200개 부스 규모로 참가해 장·노년 구직자 1천238명을 채용한다. 연합뉴스

편의점에서 일하는 A(74)씨를 통해 우리사회 일하는 노인들의 고민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엮어봅니다.

"생활비가 필요합니다".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 편의점을 택했다. 채용 당시 내가 못마땅한지 점주는 계속 찌푸리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새벽에 들어오는 물건이 많다. 나도 예외 없이 밤새 무거운 짐을 옮기고 진열대를 채워야 한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허리가 뒤틀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휴식시간에도 제대로 쉬질 못한다. 1평도 안 되는 창고에서 간식으로 나오는 삼각 김밥과 우유를 먹는다. 이 또한 노인들에겐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전립선 질환을 가진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데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다 보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이 편의점엔 낮 시간에도 나 같은 일흔 넘은 노인이 일하고 있다. 노인을 고용하면 점주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지 모르겠다마는 일할 곳이 없어 속이 타는 청년들과 일자리 나눠 먹기를 하는 내 심정도 편하지만은 않다. 면접을 보던 날에도 새파랗게 어린아이들이 여럿 와있는 걸 보았다. 어쨌거나 그 젊은이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내가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다. 우리 모두가 참담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퇴근길에 아들 녀석 집에 들렀다. 날짜가 지나 폐기처분하는 죽과 캔 장조림을 갖다 주러 갔다. 나도 가난한 노인이지만 아들 상황도 녹록지 않을 테다. 나의 외아들은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자세히 얘기를 안 해주니까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우리 노인도 자식 세대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다 안다. 아들은 손자 때문에 학군 좋은 동네에서 평생 전세살이를 하면서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집은 퇴직금이 나오면 사도 늦지 않지요." 말이 씨가 된 걸까?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값에 아들은 내가 죽기 전까진 본인 명의 집 하나 갖기가 어려워졌다. 손자는 좋은 학군에서 자랐지만, 종착점은 취업 준비생이다. 내가 눈치 없게 "대학을 나왔는데 왜 직장을 못 구하느냐?" 한 소리 했는데 오히려 아들 녀석이 벼락같이 소릴 질러대 두 번 다시 그 얘길 꺼내지 않는다.

나도 자식이 노후대책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한 사람이다. 가난한 노인이 될 줄은 몰랐다. 주택을 담보로 생활비는 받아 쓰는 친구도 있지만 물려줄 집마저 없으면 부모 대접을 더는 받기 힘들 것 같아 집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전 아들은 상속세보다 양도세가 적으니 미리 내 집 명의를 본인 앞으로 옮기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이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지만 "나는 세금 같은 거 모르니까 나 죽으면 다 가져가라. 그때는 저절로 네 것이 아니냐." 하고 말했다. 물론 죽기 전에 재산을 물려주면 세금을 덜 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진 것이 적은 노인일수록 그런 정보에 더 훤하다. 예전에는 노인들이 모이면 그런 얘기를 하는 때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어떻게 공양을 받을 것인가? 자식에겐 얼마만큼 물려주고 떠날 것인가? 그런 것들 말이다. 이제는 노인도 각자 먹고 살기 힘들어 다른 사람 걱정을 하는 일이 드물다. 자식 걱정보다는 나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다. 내 걱정까지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일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일흔이든 여든이든 가난하면 일을 해야 한다. 오늘을 살기 위해 오늘 일한다. 자식에게 가난함에 내 걱정까지 물려주는 일 만큼은 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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