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신 대구경북의 '얼' ]파리장서운동의 거점 성주군

입력 2018-10-21 14:36:43 수정 2018-10-21 14:44:18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는 백세각(百世閣) 전경. 이곳에서 유림들은 독립청원서 3천 장을 복사했다. 성주군 제공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는 백세각(百世閣) 전경. 이곳에서 유림들은 독립청원서 3천 장을 복사했다. 성주군 제공

파리장서운동에서 성주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인물은 물론 공간적으로도 매우 크다.

경북도 내 62명의 파리장서 서명자 가운데 15명이 성주 출신인데다, 당시 공산(恭山) 송준필을 비롯한 국내 유림의 거두들이 모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할 한국독립 진정서인 파리장서를 기장하고, 독립 청원서 3천 장을 복사한 백세각(百世閣)이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다.

이곳은 경북유림단 파리장서 사건의 모의 장소로 사용되고,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는 통고국내문을 제작·배포한 곳으로 독립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심산 김창숙은 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 유교 대표가 빠졌으므로 국제 활동의 사명은 유림에서 맡아야 한다며 파리장서운동의 태동부터 주역으로 활동했고, 장서를 상해 임시정부로 가져가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우송하는 등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달성군에서는 독립청원운동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다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에 동참했고, 11명이 파리장서에 서명했다.

우하교는 스스로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뒤 가창면에 사는 조긍섭을 만나 독립 청원에 관한 내용을 보완했고, 이후 성주의 장석영을 찾아가 독립청원서에 관해 상의했다.

파리장서 첫 번째 서명자인 거창의 면우(俛宇) 곽종석은 당시 영남 유림의 대표로 파리장서운동의 선두에 섰다. 곽종석은 김창숙에게 완성된 독립청원서를 외우게 하고, 청원서로 미투리 한 켤레를 삼아주었다. 상해에 도착하면 독립운동가 이동녕, 이시영,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 등과 협력할 것도 권했다.

중국 측의 도움도 반드시 필요하니 손문의 막료로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이문치를 만나 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창숙은 이날의 일을 일기에서 "선생의 용의주도함이 이와 같다"고 감탄했다.

고령 출신 파리장서 서명자 5명은 한주학파를 계승한 곽종석의 문인들로 고령을 대표하는 유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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