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치원도 학교다

입력 2018-10-24 14:12:36 수정 2018-10-24 19:21:34

홍헌득 편집국부국장.
홍헌득 편집국부국장.

두 아이를 모두 사립 유치원에 보냈다. 집 앞에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있었지만 우리한테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첫아이 때는 애초부터 기회가 없었다. 입학 시기가 끝나고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 때는 추첨까지 갔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두 아이를 그렇게 보내면서 불만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교육비가 다소 비싸긴 했지만, 커리큘럼도 좋았고 아이들도 마음에 들어 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가끔 아침 출근길에 우리 아이들이 타고 다니던 버스들이 동네를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 만족감이 얼마 전부터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온 나라를 들썩인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들은 어떨까 해서 찾아봤더니, 두 곳 모두 몇 가지 사유로 경고, 주의 여러 건을 받았고 수천만원을 환수당한 모양이었다.

사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 관련한 비슷한 문제는 이번 감사 결과 공개 이전부터 국민들이 알고 있던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 보도를 통해 익히 읽고 봐온 얘기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경산의 한 사립 유치원을 보자. 이곳은 '오병이어(五餠二魚) 유치원'이란 이름으로도 회자되었다. 오병이어는 예수께서 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5천여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기적을 이르는 말이다. 매일신문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그 유치원에서는 사과 7개로 90여 명의 원생을 먹였단다. 계란국을 끓이는 데 들어간 계란은 단 3개였다. 이러고도 아이들이 배불리 먹었다면 그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남긴 돈이 어디로 갔을지는 불문가지이다.

사립 유치원은 국공립과 달리 개인이 자신의 돈을 투자해 설립한 것이라, 수익을 남기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돈에 눈이 어두운' 정도까지 가서는 곤란하다. 수익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하고 교육 당국을 속이면서까지 축재를 해서는 안 된다. 설립자(원장)의 입장에서는 비즈니스라 할 수도 있겠지만, 유아교육도 공공성이 확보돼야 하는 '교육'의 영역이다. 유치원도 학교다. 그것이 국민적 공감대이다.

교육청의 감사 결과들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도둑들이다. 정부 지원금을 다른 데 써버린 뒤 감사에서 재수없이 걸리면 환수당하고, 아니면 그대로 '내 돈'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도 없지 않다고 한다.

예전 한 번씩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던 '허본좌' 허경영 씨가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나라는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교육 당국이 오늘쯤 사립 유치원 비리, 운영과 관련한 종합대책을 발표한다고 하니 일단 기대를 해본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앞으로 생길지 모를 도둑을 막는 대책이 먼저 나왔으면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문짝은 고쳐 놓고 볼 일이다. 회계를 투명하게 할 방안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런 연후에 국공립 유치원을 늘린다든지 하는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생각하는 것이 맞다. 몇몇 사람이 아닌 우리 미래를 살찌우라고 투자한 '피 같은 내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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