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을 공식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시간으로 18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담한 자리에서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자 교황이 "갈 수 있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실상 방북 수락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역대 교황이 북한 땅을 밟은 적이 한 번도 없는 만큼 김 위원장의 초청을 받은 교황이 방북을 실행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 일정을 예상보다 앞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문 대통령과 만남에서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황에 대한 방북요청 의사와 함께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냐는 질문을 받고서 "문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지만,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교황 방북 제안은 지난달 평양 방문 때 문 대통령이 직접 김 위원장에게 했고 김 위원장이 이에 화답해 이뤄진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면담은 교황궁 2층 교황 서재에서 38분간의 비공개 단독면담을 포함해 총 55분간 진행됐다.
첫 대면에서 교황은 문 대통령의 두 손을 꼭 잡고 이탈리어어로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이에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라고 한 뒤 "저는 대통령으로서 교황청을 방문했지만 티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기도 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과 교황의 비공개 면담은 통역인 한현택 신부만 배석했다. 한 신부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파견 근무하면서 교황청립 토마스아퀴나스대학교 교의신학 박사학위 과정에 있으며 대전교구 소속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등 최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교황이 계속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 공동번영을 위해 기도하고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청와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 결과를 지지하고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남북한 지도자들의 용기를 평가했다. 또 형제애를 기반으로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길 당부하면서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게 전 세계와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대통령의 교황 면담은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이번이 8번째다.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 2000년과 2007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2009년과 2014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교황을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교황을 두 차례 만났다.
한편 가톨릭 교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교황의 해외 순방은 개별 국가 정상의 초청과 함께 그 나라 주교회의 차원 초청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고, 교황이 이를 수락해야 현실화된다. 초청도 공식 초청장을 보내야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사제가 없는 북한은 주교 회의도 존재하지 않아, 교황청이 초청을 수락할 만한 조건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사실상 방북 수락의사를 내비침에 따라 교황청의 일반적인 해외 순방지 선정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