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역이라면 좋겠다/ 사방팔방으로 가도 좋으니까/ 마음 헛짚어/ 역마살이 끼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어도/ 역은 항상 역으로 거기 그 자리/.../ 상처받은 가난한 마음의 행로여/ 내 마음의 행군이여/ 이 저녁 역으로 가는 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역마살을 남기고.' 대구 출신 박해수 시인은 생전에 전국의 여러 기차역이 지닌 서정을 시(詩)로 남겼다. 시인에게 기차역은 그립고 간절한 날들의 출발점이자 마침표이기도 했다. 어지럽게 흩어진 철길이 저만치서 한길로 만나듯, 지척대는 삶의 끈들을 간곡하게 이어가는 여정이었다. 기차역은 지나온 우리 삶의 흔적이고 잊혀 가는 아련한 고향이기도 하다. 숱한 사연을 지닌 뭇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의 장소이면서, 일본 영화 '철도원'의 장면처럼 역무원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옛 기차역에는 그렇게 쉼표가 있었고 사람 냄새가 스며 있었다. 그래서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던 박해수 시인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던 정호승 시인도,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던 안도현 시인도 속절없이 기차역을 서성거렸을 것이다.
산업화시대의 숨 가쁜 호흡 속에 기차역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의 동경과 상실을 함께 지켜보았다. 이제 첨단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기차역은 속도와 효율만 숭배하는 이기(利己)의 첨병이 되었다. 충북 청주에 있는 KTX 오송역이 그 욕망에 휩쓸렸고, 구미김천역도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초 역사 명칭을 두고 마찰을 빚은 지 15년 만에 또 이웃 간에 싸움이 붙은 꼴이다.
구미는 '국가산업단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KTX 구미역 정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고, 김천은 '혁신도시의 입장은 물론 고속철도의 목적과 운영의 효율성을 도외시한 일방적인 행위'라며 반박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경북 유일의 집권 여당 출신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에다 야당 의원들의 지역이기주의가 맞물린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꿎은 기차역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막대한 예산을 또 낭비하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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