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구서 콘서트 여는 가수 이은하

입력 2018-10-10 11:24:52

1970, 80년대
1970, 80년대 '디스코 여왕'으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이은하가 27일 경북대강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쿠싱증후군으로 몸 상태가 좋지않지만 연습을 통해 전성기적 성량과 안무를 들려줄 계획이다. 삼익CMI 제공

"봄소풍 장기자랑서 디스코 추며 '밤차' 부른 언니들, 뒷골목에서 껌씹으며 '아리송해' 춤추던 오빠들 모두 모이세요. 저, 이은하가 1970, 80년대 추억으로 '소환'해드리겠습니다."

'디스코의 여왕' '한국의 디바' '서울의 도나 써머'로 불리던 이은하가 27일(토) 대구 경북대 강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수도권에서 이은하 이름을 건 크고 작은 행사가 가끔 열렸지만 지방에서 대형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이번 공연은 그녀가 투병 중에 기획된 콘서트여서 많은 팬들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이은하 매니지먼트사가 이번 공연에 거는 기대는 크다. 소속사는 이번 콘서트를 계기로 7080세대를 겨냥한 '이은하 마케팅'을 재시동해 전국적인 콘텐츠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그녀는 지금 헬스장과 연습실을 오가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살도 빼고 목도 다듬어서 완벽한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94kg에 육박하던 체중은 77kg까지 줄었다. 10시간 이상의 맹훈련, 그 목표는 단 하나, 힘든 시기에 자신을 초청해준 대구팬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다.

1970, 80년대
1970, 80년대 '디스코 여왕'으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이은하가 27일 경북대강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쿠싱증후군으로 몸 상태가 좋지않지만 연습을 통해 전성기적 성량과 안무를 들려줄 계획이다. 삼익CMI 제공

◆13세에 '님 마중'으로 가요계 데뷔

"효순아(이은하의 본명), 오늘을 '섬마을 선생님' 한번 불러봐라, 간드러지게 더 꺾으라니까, 더, 더..." 밤무대 밴드 출신 은하의 부친은 그녀가 5, 6세때부터 노래를 가르쳤다. 주로 트로트였는데 노래가 성에 차지 않으면 악기로 두들겨 패곤했다.

누군가 제대로 된 음악학원에 보내보라고 권유를 하자 어느날 부친은 은하를 작곡가 김진규 씨에게 데려갔다. 허스키하고 풍부한 성량을 알아본 김진규 씨는 "이 친구야 이 아이는 이미자(트로트)가 아니고 김추자(댄스 가수) 계열일세"라며 일침을 놓았다.

이 한마디는 이은하의 노래장르와 음악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 자리서 김진규 씨에게 '님 마중'이란 곡을 받고 13세에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1973년 이었다.

처음엔 악단 아코디언 멤버였던 아버지를 따라 밤무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했다. 당시엔 엄격한 방송규제 때문에 미성년자는 TV에 출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밤무대 데뷔를 위해 세 살 위 사촌언니 주민등본으로 서류접수를 하고 1975년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1970, 80년대
1970, 80년대 '디스코 여왕'으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이은하가 27일 경북대강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쿠싱증후군으로 몸 상태가 좋지않지만 연습을 통해 전성기적 성량과 안무를 들려줄 계획이다. 삼익CMI 제공

◆'밤차'로 인기... 10대가수 9번 선정

어렵게 공중파 무대에 진출한 이은하는 1976년에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으로 가요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녀의 '상품성'을 알아본 유승엽 작곡가가 그녀에게 '밤차'를 만들어 주면서 본격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 곡에서 그녀는 이른바 '찌르기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디스코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이 춤의 정체가 사실은 디스코가 아닌 허슬(hustle)의 한 유형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춤은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추던 허슬을 흉내낸 것이었어요. 그런데 마무리 동작이 당시 유행하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존 트라블타의 동작과 너무 흡사해 한 기자가 '디스코의 여왕'으로 이름을 붙여준 거죠. 그 기사 한줄 덕에 전 '한국의 도나 써머'가 되어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죠."

인기가 한번 궤도에 오르자 부르는 노래마다 대히트를 기록했고 그 흥행은 음반 판매와 공연수익으로 이어졌다. 총 24개 앨범에서 '봄비' '겨울 장미' '돌이키지마'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탄생했다. 노래의 히트는 크고 작은 상복으로 이어졌다. 1977년 MBC 10대가수상을 시작으로 10대 가수상을 9번이나 받았고 '가수왕'에도 세 번이나 올랐다.

1970, 80년대
1970, 80년대 '디스코 여왕'으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 이은하가 27일 경북대강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쿠싱증후군으로 몸 상태가 좋지않지만 연습을 통해 전성기적 성량과 안무를 들려줄 계획이다. 삼익CMI 제공

◆부친 사업 부도·병 겹쳐 극단적 생각도

10대가수 9관왕을 정점으로 이은하의 노래 인생은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때 마침 악단생활을 접고 건설업에 뛰어든 부친의 사업도 빚더미에 올랐다. 빚보증에 이은하 이름으로 발행했던 어음이 문제였다. 원금은 4억5천만원 이었는데 부친이 돌려막기를 하고, 사채까지 끌어 쓰다 50억까지 불어났다.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는 생각에 수면제도 먹어봤어요. 살 운명이었는지 3일만에 깨어나더군요. '아직은 갈 때가 아닌가보다' 조금 더 노력해보자고 파산 신청을 했어요." 우여곡절을 겪던 파산 신청은 최근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채무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었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이랄지, 집안의 불행은 이은하의 건강까지 망쳐놓았다. 지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건 쿠싱(Cushing's syndrome) 증후군과 척추질환. 사실상 소녀가장 생활을 하며 어릴 적부터 생계를 위해 혹사 해온데 대한 결과였다. 이름조차 생소한 쿠싱증후군은 호르몬 코르티솔 과다분비로 부신(副腎) 기능 이상으로 생기는 병. 얼굴이 달처럼 부어오르는 '문 페이스'(moon face)는 이 병의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대구 콘서트위해 체중 30kg 감량

사업 실패, 투병 생활 같은 그녀의 지독한 불운은 그녀의 결혼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친악단의 기타리스트와 한 때 '잘못된 만남'으로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고, 몇몇 남자를 만났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은하는 최근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병 후유증으로 망가진 외모는 그녀의 가장 큰 핸디캡. TV에 비친 모습을 보고 네티즌들은 성형수술 부작용이니, 보톡스를 맞았느니 댓글을 쏟아냈다. 남의 불행을 너무 가볍게 재단하는 것 같아 상처도 커졌다.

이런 중에 날아든 대구의 초청 공연은 그녀에게 큰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최근에 투병이후 지방 행사나 밤무대 행사 말고는 가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콘서트나 리사이틀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은하는 오늘도 연습실에서 '밤차' 안무에 열중하고 있다. 언제 병이 악화될지 몰라 동생이 구급약통을 들고 따라 다닌다.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도 있다. 이번 대구무대는 팬들과 추억을 더듬어보는 만남인데 건강 때무에 망가진 외모가 늘 걱정이다.

"첫사랑 추억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제 맘이 지금도 설렙니다. 그 두근거림으로 연습을 하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콘서트 당일까지 꼭 65kg까지 체중을 줄여서 전성기적 '밤차' 안무를 완벽하게 재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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