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대구경북(TK)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대경회'.
차흥봉(76·김대중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대경회 회장은 대경회 회장으로서 역할도 열심이지만 국내에서 손꼽히는 노인 문제 전문가로서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가로 바쁘게 뛰고 있다.
의성 출신인 차 회장은 학부·대학원(서울대 사회학과)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도 경제발전이 되면 결국 노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인문제라는 개념조차 형성되지 않았던 1960년대 후반, 수십 년 후에 닥칠 고령화를 점쳤던 것이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된 이후에는 앞으로 다가올 대한민국 노인문제에 대한 방비책 마련에 힘썼다. 1970년 보건복지부에 들어온 이후, 1970년대 중반 보건복지부 사회과장을 하면서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의 기틀을 만들었던 차 회장. 그의 오랜 준비 덕분에 1981년, 노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골칫거리로 떠오르기 이전인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기초가 형성된 것이다.
세계 유일의 노인전문가 모임인 세계노년학회 직전 회장을 역임했고 한림대 명예교수로서, 사회복지학자로서의 삶도 이어가는 그는 "눈앞에 닥쳐온 고령화를 위기라고 한탄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고령화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회로 바꾸는 전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간 차 회장은 "건강한 노인들을 노동시장으로 편입시켜 경제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이른바 '고령자 자립 사회'를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고령화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며, 우리나라가 새로운 도약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1960년대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데,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노인문제가 있었나?
▶1960년대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장차 우리나라도 노인 문제가 나타나고 고령화사회가 닥칠 것이라고 예감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웃나라 일본을 보니 그랬다. 1970년 일본의 노인 인구가 7%를 넘어 고령화사회가 시작됐다. 일본은 노인무료의료제도를 도입하고 있었는데 1972년 이를 폐지했다. 노인들이 급격하게 늘면서 무료의료제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우리도 일본의 뒤를 밟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농촌에 홀로 남겨진 노인들의 부양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이 고작 3%였다. 그러니 관심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노인 문제에 대한 정책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봤다. 내가 1970년대 보건복지부 사회과장을 하면서 준비했던 노인복지법이 1981년 국회를 통과했고, 이러한 연장선에서 1980년대 경로우대제도가 등장했으며 의료보험 시행도 본격화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가 준비를 했다지만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사실이다. 국가적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닌가?
▶위기는 맞다. 지금 노인들이 너무나 많아져 젊은이들의 부양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경제활동인구, 즉 청년 20명쯤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20대1 구조에서 10대1, 5대1을 거쳐,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앙해야하는 1대1 구조로 가게된다.
이래서는 안된다. 활동가능한 노인들에 대해서는 이전 노인의 개념과 달리 보는 노력이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활동가능한 노인은 이제 생산가능 노동인구로 분류해 사회적 부담비율을 인식할 때 젊은이들과 함께 생산가능 노동인구에 산입시켜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예견되는 부양부담이 확 줄어든다. 노인이 사회적 짐이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 되는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을 모두 노인으로 분류해 노동인구에서 빼버리는 단순 사고로는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를 피하지 못한다. 65세 이상 노인이라도 건강한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노인에 대한 부양부담이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는 '고령자 자립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령자 자립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건강한 노인들을 사회적 자원으로 편입시켜야 하는데,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나?
▶정년연장이다. 내가 몇 살로 보이나?(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온 그는 실제 6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내가 우리 나이로 77세다. 아직 건강하다.
노인 개념을 바꿔야 한다. 현재 65세인 노인 개념을 75세로 고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정년을 65세, 70세, 7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해나가야 한다.
결국 요점은 일할 수 있는 노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연령주의에 빠져서 "나이든 노인들은 별 볼 일 없다"는 부정적 관념에 매몰돼있으면 고령화사회에 대한 해법이 없다.
전세계에서 최고령국가로 꼽히는 일본을 보자. 벌써 48년 전인 1970년 고령화사회가 됐고 2004년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지만 아직 나라가 건재하다. 그 이유는 노인을 활용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든 덕분이다.
일본은 '1억 인구 총활약상 장관'이 내각에 있다. 1억 명 모두를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 덕분에 나라가 여전히 강하고 힘 있는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 여행을 가보면 보이지 않나? 곳곳에서 노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고령화가 닥쳤음에도 튼튼한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얘기했는데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방비책을 더 만들어야 하나? 우리 대책이 많이 미흡한가?
▶정부가 대통령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놨다. 그런데 저출산은 이슈가 되는데 고령사회는 뒷전에 밀려있다. 지금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별 대책이 없다.
고령사회위원회를 따로 떼내 노인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동부·교육부 등 관련되는 부처가 모두 모여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대책을 본격적으로 만들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공무원들이 쉽게 만들어내는 정책이 노인 등 특정인을 고용하면 나라 곳간을 풀어 보조금 주는 것인데 이런 정책은 최하 중의 최하 수단이다. 급여를 정상적으로 주는 정상인력으로 노인들을 대우해야 문제가 풀린다. 절대 보조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만약 노인 문제를 해결할 정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나온다고 해도 시행 속도를 내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나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2050년쯤에 난리가 난다. 노인 부양을 감당 못 해 각종 연금이 바닥나고 노인의료비가 너무 많아져 건강보험 재정이 엉망이 된다.
경제활동인구가 2천만 명인데 노인이 2천만 명이 된다고 상상해보라. 노인들이 일하지 않고 모두 병원에 가있으면 나라가 도대체 어찌 되겠는가?
내가 설명한 대로 정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노인들이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면 고령자 자립사회가 성큼 다가오게 되고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재정도 숨통이 틘다.
노인들이 일을 하면 그 기간 동안에는 국민연금 지급을 유예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연금 재정을 보호할 수 있다. 노인들이 일하면 건강해져서 병원 갈 일이 없다. 건강보험이 지탱된다.
노인들이 일하는 고령자 자립사회는 저출산의 충격도 완화할 수 있다. 지금 애 낳으라고 하는데 저출산 풍조가 쉽게 변화할 수 있는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문제해결이 됐나? 일하는 노인이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도 완화할 수 있다.
-고령자 자립사회로 유도하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과제도 중요하지만 노인 개인의 차원에서도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그렇지 않나?
▶국가의 정책이 노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비율은 노인 전체 삶의 절반도 안된다. 결국 상당 부분이 개인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항상 5가지를 얘기한다. 건강과 돈, 활동, 네트워크, 마음먹기다. 건강과 돈은 필수조건이고, 활동과 네트워크, 마음먹기는 충분조건이다.
내 경우를 보면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은 없다. 거창한 운동 프로그램도 없다. 자주 걷고 활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활동이 중요하다.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 대한 네트워크를 갖고 활동을 하면서 일에 대한 성취감을 꾸준히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사회복지 외길을 걸어왔으니 이 영역에서 꾸준히 활동한다. 이렇게 되면 매일매일 자아에 대한 존중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오늘도 뭔가 하나를 이뤘다' '사회에 기여했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만들어진다. 5가지를 갖고 꾸준히 활동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노인들은 이 5가지를 갖추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요즘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노인들이 많은데, 차 회장이 말한 '5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보면 좋은 선택일까?
▶시골에서 생활하면 아무래도 네트워크가 부족해진다. 지금 우리 농·산·어촌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가족도, 친척도 모두 떠나버렸으니 네트워크가 많지 않다. 경로당에서는 충분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없다.
의료혜택도 문제다. 이런 점에서 노인 인구의 귀농귀촌이 향후 활성화되려면 국가가 나서서 의료혜택에 대한 일정 부분 도움이 필요하다.
노인 주거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면 앞으로 고령사회가 더 진행된다 하더라도 노인들이 도시에 있는 집을 팔고 시골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해온 생활 형태를 계속해서 유지해나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내가 자립사회를 강조하지만 남한테 기대지 않는 노력도 중요하다.
-고령화사회를 긍정적으로, 기회로 보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지방의 입장, 특히 농·산·어촌이 많은 대구경북은 사실 불안감이 크기만 하다.

▶대구경북이 여러 산업의 쇠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구가 줄고,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대구경북의 비중이 줄고 있다. 고령화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대구는 첨단의료산업단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노인의료산업을 활성화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 여기에서 성공하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올 것이다.
노인들이 많아지면 노인들을 집안 곳곳에서 돕기 위한 로봇산업도 앞으로 커지지 않겠나? 이에 발맞춰 일본은 로봇산업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기계·금속은 물론, 전자산업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대구경북이 이 부분에서 1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령사회를 새로운 산업성장의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이 대구경북에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한림대에서 교수를 할 때다. 12년 전쯤 고향 의성에 고령친화산업을 일으키라는 요지의 계획을 마련해준 적이 있는데 잘 안됐다. 생각을 바꿔야 새로운 활로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문제를 푸는데도 바쁠 텐데 고향인 대구경북의 발전을 위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대경회는 2001년 만들어졌는데 벌써 17년이 됐다. 매달 한 번씩 모여 발표도 듣고 토론도 한다. 회원이 45명인데 회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발표를 한다. 때로는 대구시장이나 경북도지사가 와서 발표를 하기도 한다. 지난달엔 권영진 대구시장이 왔고 다음달엔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올 예정이다.
다른 시도는 이런 모임이 없다. 대구경북만이 이런 모임을 갖고 있다. 고향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는 노력이다.
다른 시도와 비교해 대구경북만이 잘하는 것이 많다. 매년 초 매일신문이 주최해 서울에서 열리는 재경신년교례회는 굉장히 의미 있는 행사다. 매일신문의 노력으로 이 행사가 서울과 고향의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도 역할을 좀 열심히 하려고 한다. 대경학사를 서울에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다른 시도는 학사가 참 잘된다. 대구경북도 이제는 서울에 대경학사를 만들어야 한다. 대경학사가 서울과 고향을 잇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열심히 도울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