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광 동화작가
고구마를 캤다.
봄날, 읍내 장에서 모종 한 단을 샀다. 모종 파는 젊은이는 말끝마다 "아버지요!"라며 살갑게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모종은 꼭 그 젊은이에게 샀다. 그런데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그는 모종을 팔면서 키우는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심은 지 100일 뒤에 캐세요. 더 두면 심이 생겨요. 일찍 캐면 전분 형성이 되지 않아서 당도가 떨어진답니다." 흙 만지는 재미로 농사를 하는 나는 그의 가르침이 다디단 지식이었다. 모종 심은 날에서 100일 뒤에 다가올 날짜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두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주들과 고구마 밭에 들어갔다. 손주들에게 구경시키려고 동그라미 날짜를 조금 미루어 두었다. 푸른 잎과 줄기가 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료와 농약을 한 번도 주지 않았는데도 잘 자라 주었다. 양파 사이에 심었는데 자리 탓인지, 양파 세력에 눌려서인지 처음에는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자람이 무척 더디었다. 양파를 뽑아내고 난 뒤에는 그나마 제자리를 잡는 듯했으나 이어진 무더위 탓에 낮이면 비실비실 마르기까지 했다. 새 잎과 줄기를 만들어 뻗어나가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해 질 무렵에 물이나 뿌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다행히 더위가 숙지막할 무렵부터 뒤늦게 힘을 얻은 고구마는 쑥쑥 자라서 밭을 덮었다. 그런 게 불과 한 달여를 지났을까. 100일이 되었다.
그 한 달여 만에 땅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땅을 헤집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팔뚝만 한 고구마들이 마치 꺼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불쑥불쑥 드러냈다. 걸음마를 막 벗어난 손주들은 하나씩 들고 낑낑대며 날랐다. 한 포기를 캐낼 때마다 환호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놈들이 땅 위로 올라왔다. 손주들의 '우와! 우와!' 내지르는 환호와 어울려 텃밭은 온통 축제를 연출하였다.
달게 먹었던 고구마가 땅에서 올라온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손주 녀석들은 여전히 고구마를 하나씩 껴안고 깔깔댔다. 새삼스럽게 고구마처럼 훌쩍 커버린 손주들의 모습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이런 기쁨과 행복감을 주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모든 생명의 변화가 바로 신비라는 사실이 크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늘과 햇살과 땅, 그 속을 흐르는 물과 그 위를 떠도는 맑은 공기가 뭇 생명을 끊임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자연이 내미는 손길이었다. 세상이라는 소쿠리에 가득한 생명의 신비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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