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정음(正音)

입력 2018-10-0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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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고려 인종 때 연영전(延英殿)을 정비한 집현전(集賢殿)은 조선 세종 즉위 이듬해인 1420년부터 제 기능을 한다. 수장인 영전사(領殿事)와 대제학, 제학은 중신이 겸임했다. 실무는 3품 부제학 이하의 관리가 맡았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정음(正音) 창제에 관여한 집현전 학자 이름과 관직이 나온다. 47세의 대제학 정인지, 34세의 응교 최항을 빼면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은 모두 20대다. 당시 세종의 나이는 46세였다.

'정음 반대 상소'를 올린 최만리는 집현전 부제학이었다. 그는 정음 창제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정음의 언어학적·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간파한 지식인이다.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최만리를 '한자한문 원리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가 세종의 '문자혁명'에 반기를 든 것은 '새 문자의 창제가 지(知)의 지평을 움직이게 하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가 상소에 언급한 정음의 원리 즉 '용음합자'(用音合字)는 옛것을 거스르는 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음에 의거해 글자를 합치는' 문자 형태와 사고방식은 한자와 생판 다르기 때문에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세종과 반대론자의 이 언어학적 사상 투쟁은 정음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을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배경이다.

내일이 한글날이다. 전 세계 수백 개의 문자 중 정확히 생일을 알고 기리는 유일한 문자의 날이다. 정음 반포 572년, '가갸날'에서 1928년 '한글날'로 기념일 명칭을 바꾼 지 꼭 90년이다. 그런데 국민 10명 중 8명이 한글 창제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문화연대 설문조사에서 세종(17%), 세종과 집현전 학자 공동(55.1%), 세종이 지시하고 집현전 학자들 창제(24.4%)로 제각각이다. 초중고 교과서 상당수가 잘못 기술하는 바람에 이런 오류가 생겼다.

세종실록은 이리 기록했다. 25년(1443년) 12월 30일 기사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 (…)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누가 언제 한글을 만들었는지 답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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