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원칙의 함정

입력 2018-09-27 11:24:19 수정 2018-10-12 17:47:22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연휴 마지막날 아침, 동대구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택시 기사는 "40년 동안 대구에서 택시를 몰았는데 이번 추석 연휴처럼 손님이 없었던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말을 이어갔다. "명절 연휴에는 식당가가 몰려 있는 대구시내 큰 네거리마다 젊은 승객이 많아 밤이면 택시 잡기 경쟁이 나타났는데 이번 추석에는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 정말 경기가 안 좋다. 길거리를 다녀보면 식당 장사가 안 되고 인건비가 너무 올라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는 중이다."

동대구역에 닿아 기자가 내리기 직전, 예상했던 대로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험담을 통해 바닥으로 떨어진 실물경제 상황의 원인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서울행 기차에 올라 추석 연휴기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얘기를 떠올려봤다. 기업인들도 이구동성이었다. 주문은 없는데 임금은 올라가고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 인상 효과는 물론, 납기 일정 차질도 불러온다고 기업인들은 하소연했다.

건설이나 설비 업종의 CEO들은 일감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일손이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임금이 너무 올라 일손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일당 20만원을 줘도 일손을 못 구하는 지경이라는 게 이들의 얘기였다.

이들의 결론 역시 경제 실상을 모르고 소득주도성장(소주성)에 매달리는 청와대가 문제라는 거였다. "머하노? 거 가서 좀 캐라(청와대에 가서 실상을 좀 전해라)."

대구에 있는 동안 기자의 귀가 따갑도록 비난의 대상이 됐던 문 대통령은 사실 추석 연휴도 쉬지 못했다. 2박 3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UN총회에 나가 다자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늘어지는 일정을 찾아보기 어렵고 3박 5일이라는 그야말로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이었다. 문 대통령의 지론은 "해외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면 국민들이 낸 아까운 세금을 더 써야 하니까 최대한 일정을 촘촘하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순방 일정이 보여주듯 문 대통령은 원칙에 충실하다. 그러나 경제에서만큼은 영생불멸의 원칙이 없다.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이 항상 그러하듯 모순이 발견되면 그에 대한 비판과 변용, 그리고 수정이 필요하다. 이를 알지 못하면 함정에 빠진다.

늦지 않았다. 이제 취임 500일을 갓 넘겼을 뿐이다.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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