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홋카이도/남자휴식위원회 지음/생각정거장 펴냄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 편집숍이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편집숍은 주인장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흥미로운 물건들을 찾아내고 매력적으로 진열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들인다. 그 덕에 소비자는 힘들게 발품을 팔 필요 없이 한 가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쇼핑 방식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삿포로에서 유명한 편집숍 디앤디파트먼트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무조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부러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가 휴일의 한적함을 맘껏 즐겼다.'
여행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풍광이 좋은 곳이나 환경이 쾌적하고 힐링이 가능한 곳을 찾거나 이색적인 멋과 맛이 공존하는 장소에 들러 평소와 다른 호사를 누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방인의 시선에 걸린 낭만적인 홋카이도의 일상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는 주제별 컬러 사진과 길지 않은 텍스트로 인해 오히려 잔잔한 영상을 훑어보듯 홋카이도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지은이 '남자휴식위원회'도 이색적이다. 휴식이란 말은 좋은데 도대체 휴식에 뭘 가리고 거를 것이 있어 위원회를 둔 걸까?
◆남자휴식위원회의 정체
여행기획과 글쓰기를 담당하며 현재 온라인 음원사이트와 잡지 등에 책과 음악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다토(DATO), 웹 디자이너이자 SNS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사진과 영상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카이, 유일한 여자 멤버로 출판 기획과 진행을 맡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미디어사이트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아요나.
남자휴식위원회는 이들 3인으로 구성된 대만의 창작집단이다. 이들은 '삶이 곧 여행'이라는 모토 아래 휴일을 주제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잡지 '꽁치'를 발간해 여행소식을 전하고 홍콩 에어비앤비와 협업을 기획하고 일본 무인양품과 이벤트를 여는 등 대만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첫 저서로 '교토감성'에 이어 '느긋하게-홋카이도'가 두 번째이며 지금은 홍콩에서 휴식여행을 주제로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일상 풍경 속으로
남자휴식위원회 이들 3인의 여행은 홋카이도에 사는 누군가의 일상과 닮아 있다. 화려하게 포장된 관광지를 훑어보는 대신 골목골목 느긋하게 걸으며 도시의 숨은 매력을 들여다본다. 삿포로 니시주핫초메(西18丁目)의 고르고 골라 찾은 편집숍에선 충동구매를 유도하지 않은 정갈한 진열에 놀라고, 편집숍을 나서자마자 문득 배가 고프던 차에 코를 자극하는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카페에선 입에 딱 맞는 음식과 홍차 맛에 한껏 매료되기도 한다.
평범한 외관의 아파트이자 지금은 다양한 상점이 들어선 건물 스페이스 1-15에 들러 찾은 501호 가게 '타케차스 레코즈'에선 음악에 관심이 많은 다토가 레코드가게 주인과 음악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떤다. 그 모양새가 외국을 여행 중인 타국사람 같지가 않다.
이들 3인은 또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그곳 소재 대학 캠퍼스를 꼭 방문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이유인즉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연못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보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떠들며 지나가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활기 넘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삿포로 시내 브루클린 파라의 따끈따끈한 3단 팬케이크 맛에 반해 사진 캡션에 '삿포로에 가면 꼭 들려야 할 곳 중 1순위로 등극할 만큼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핫케이크'라고 인쇄돼 있어 얼마나 그 맛에 반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커피를 곁들인 팬케이크 점심 한정세트 값이 850엔으로 가성비갑임을 빠뜨리지도 않았다.
◆여행도 잠깐 쉬어가야 할 때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상가에서 생화 두 다발을 고르고 숯불구이 돼지고기 도시락과 미소 된장국을 샀다. 슈퍼마켓 마감특가세일을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절대 놓칠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94쪽)
물 설고 땅 낯선 타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이들 3인은 홋카이도로 오기 전 일본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현지 지인을 소개받았다. 이들이 일본의 유행문화에 대해 꿰뚫고 있듯 소개받은 일본 친구도 대만 마니아라서 그동안 SNS로 충분한 교분을 쌓아두었던 터였다. 당연히 함께 만나 멋진 식사와 술, 노래 그리고 우정의 시간을 보낸다.
◆홋카이도 여행, 더 깊숙한 곳으로
일부러 토요일 아침 일찍 삿포로에서 전차를 이용, 오타루로 간 이들 3인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무농약 채소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산지 직거래 장터를 체험하고 더 나아가 홋카이도 생활 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어서 여행 중에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농장 아르바이트를 일정에 집어넣는다.
오타루 도착 후 다시 버스로 이동해 찾아간 샤코탄 반도에 있는 농장. 여기서 그들은 황무지 정리, 잡초 뽑기, 신선한 계란 닦고 포장하기, 마늘종 정리 등 실제 농장일을 모두 소화해내는 가운데 농장주 아주머니와 때때로 파스타와 스키야키 등 일본요리를 만들며 일본인처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농장에서 며칠을 보낸 후 이들은 다시 하코다테로 와서 휴식을 위한 그 나름의 관광모드를 모색, 포장마차, 수제햄버거, 커피향과 음악 등 다양한 문화체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은 또 단락마다 그들이 들렀던 가게나 장소의 전화번호, 홈페이지, 쉬는 날 등 정보를 빼놓지 않고 기록, 여행가이드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336쪽, 1만5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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