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70년 전 그 길

입력 2018-09-17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버들미댁은 정신없이 손을 놀릴 따름이지 속으로는 온갖 슬픈 생각에 뒤흔들렸다.…다시 하늘을 우러러보니 뭉기뭉기 흰구름장 서너너덧이 탐스럽게 떠 있다.'

1948년 10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매일신문의 전신인 남선경제신문에 19회에 걸쳐 실린 첫 연재소설 '밥'의 시작과 마지막 글이다. 일제강점기 하루하루 끼니조차 잇기 힘든 식민지 백성들의 하늘인 '밥'을 위해 순사 등 일제 '그놈들의 앞잽이 조선놈들' 등쌀에 소작도 떼이고 결국 그들 농간에 만주로 강제로 살 길을 찾아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버들미댁'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그런데 수원 출신 작가 박승극(朴勝極)은 연재 당시 남쪽에 없었다. 이미 그해 8월쯤 영천이 고향인 아내, 자녀와 함께 월북한 뒤였다. 그러나 원고는 어김없었고 10월 1일 금요일부터 11월 6일 토요일까지 19차례 연재됐다. 아마도 원고는 자신의 또 다른 소설인 '길'의 주인공이 '해방 전에도 걷고, 해방 후에도 걷는 길'로 직접 또는 인편(人便)으로 마감했거나 우송(郵送)했을 터이다. 1948년 그해는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 전 주석도 서울~평양을 자유로이 다닐 때였으니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강산의 두 쪽을 잇는 길 내기 활동이 한창이다. 벌써 4, 5월 두 차례 남북 정상이 뭍길로 만났고, 문 대통령의 평양행(行) 서해 하늘길도 18일 열린다. 이제 뱃길과 철길이 뚫릴 차례다. 북한의 남침용 땅밑 굴길까지 보태면 더없이 좋을, 먼 뒷날의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박 작가처럼 광복 전후 맘대로 드나들던 남북의 길이 하나둘씩 뚫리고 이어지고 볼 일이니 반갑다.

마침 지난 14일에는 개성공단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마련돼 24시간 365일 쉼 없이 운영된다니 남다른 감회가 아닐 수 없다. 일제 침략과 외세로 73년이나 잘린 남북 강산의 허리를 하나로 꿰매는 노력의 결과임이 틀림없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로 넘을 산이 많고 길도 굽이굽이지만 바야흐로 가을,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을 기대함이 나만인가.

모쪼록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연락사무소 개소로 70년 전처럼 남북을 잇는 길이 많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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