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철이 만난 사람> 신홍경 '신홍경 디자인세상' 대표

입력 2018-09-11 15:01:51 수정 2018-09-11 19:42:12

이무성 객원기자
이무성 객원기자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용산구 한강로 지하 7층, 지상 22층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는 건물이다.

독특한 외관 디자인 때문에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흰색 창살을 건물 전체에 입혀 순백의 느낌이 나는 이 건물은 1~3층을 개방, 아모레퍼시픽 직원이 아니라도 누구든 건물에 들어와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이 건물 1~3층에는 카페·미술관 등의 편의시설도 들어서 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들어선 이후 이 동네는 글자 그대로 '뜨고' 있다. 유동인구는 물론, 부근 상주인구까지 크게 늘어나면서 인근 상권이 확 살아나는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일대는 찾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용리단길'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용리단길은 골목상권으로 유명한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과 용산을 합성한 신조어.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건물 하나가 동네의 천지개벽을 이뤄낸 것이다.

대구 출신(영남대 회화과 졸업·홍익대 실내건축학과 석사·독일 뉘른베르그 예술대 실내건축학과 졸업·경원대 실내건축학과 정교수 역임)의 신홍경(60) '신홍경 디자인세상' 대표를 만난 것은 아모레퍼시픽 건물이 바로 보이는 동네에서였다. 디자인이 동네를 완전히 바꾼 현장에서 기자는 디자인 얘기를 들었다. 신 대표는 대구경북, 특히 큰 도시인 대구가 이제는 디자인에 눈떠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사무실에 앉으니 책상 위에 놓인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감사패가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모자란 기자는 감사패에 얽힌 이야기부터 물었다. 이 질문에서부터 디자인에 대한 그의 해석을 풀어내려보기로 했다.

-유진룡 전 문화부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문화부 프로젝트를 한 것이 있는가?

▶문화부 청사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총괄 업무를 2차례에 걸쳐 했다. 첫번째는 이창동 장관이 재직하던 참여정부 때 서울 광화문의 문화부 청사를 변화시킨 것이고, 두번째는 세종시로 이사를 간 문화부 청사를 디지인한 것이다. 유 전 장관의 감사패는 세종시로 간 문화부 청사를 총괄 디자인하고 설계한 데 대한 감사의 뜻이다.

-공무원들이 업무를 보는 공공건물은 사기업의 공간 배치와 다를텐데, 문화부 청사를 어떻게 바꿨다는 것인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을 새 디자인을 통해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문화부에서 기조실장을 할때부터 알았는데 차관·장관을 거치면서 문화부 청사 디자인을 확 바꿔줄 것을 내게 요구했다. 내가 처음 본 문화부 청사의 각 사무실은 군대 사단장실과 다름이 없었다. 하급자들이 상급자들에게 '충성'이라는 구호를 곧 쏟아낼 것 같은 상하 자리구분이 엄격한 구조였다.

철제 책상과 하늘을 찌를듯 쌓여있는 서류더미, 그리고 곳곳의 공간을 갈라놓은 칸막이도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문화부 공간을 리모델링하면서 칸막이를 없애자고 했다. 그랬더니 공무원들이 안된다고 했다. 민원인들이 와서 소리를 자주 지르는데 칸막이를 없애면 업무에 방해된다고 했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국장 책상은 엄청나게 크고, 직급이 내려갈수록 차별을 둬 하급 공무원들의 책상은 작은데 직급에 관계없이 책상을 모두 똑같은 것으로 했다. 개인공간이 많았는데 이를 줄이고 공용공간을 늘렸다. 공용공간을 늘린 이유는 공무원들끼리 자주 만나 토론하는 기회를 늘리라는 취지였다.

-청사 디자인을 바꾸고 나서 공무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바꾸고 나니 공무원들이 더 좋아했다. 민원인들이 고함을 친다고 탁 트인 공간은 안된다고 공무원들이 우려했는데 공간을 확 열어놓으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게되는 구조가 되니 큰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들이 오히려 사라졌다. 디자인이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민원인들의 태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공무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긍정이 더 많이 나왔다. 이 업적을 정리해놓기 위해 문화부와 함께 기록도 남겼다. 문화부가 발간한 '가슴으로 말하는 공간'이란 책자다. 특정인에 대해 너무 칭찬하는 것 같지만 유진룡 전 장관이 없었으면 그런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유 전 장관이 내게 감사패를 줬지만 마음속으로 내가 그에게 감사패를 주고 싶다. 그는 문화부 청사 디자인을 바꾸면서 디자인만큼은 전문가의 말을 듣고 존중해줘야한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디자인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결과가 좋았다.

이무성 객원기자
이무성 객원기자

-경력을 보니 학부에서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는데 왜 디자인에 빠져들게됐나?

▶디자인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산업 경쟁력, 도시 경쟁력과 직결되는 힘을 디자인이 가졌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체제를 거치면서 많은 물건이 나왔지만 최근 10여년간 이 체제를 뒤집어놓는 새로운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 디자인이 있다.

아이폰을 탄생시킨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라는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제품의 성능도 좋았지만 소비자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디자인이 아이폰에서 나왔다. 아이폰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게임 체인지(Game Change)가 일어난 것이다. 애플은 지난달에 역사상 첫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도달했다. 디자인 혁신이 만들어낸 엄청난 결과다. 디자인의 변화는 산업뿐만 아니라 도시까지 바꾸는 힘을 지녔다.

-디자인이 물건의 가치도 바꾸지만 도시까지 바꾼다는 뜻은 이해하겠는데 사실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는 창밖에 보이는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건물을 보라. 독특한 건물이다. 외관도 아름답지만 엄청난 디자인 혁명이 숨어있는 건물이다. 햇볕이 바로 들어와 눈부심이 없도록 외부 디자인을 해 내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편하게 만들어놨다.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들을수록 더 가보고 싶어지는 건물이다. 인파가 계속 몰리고 사람들이 열광한다. 내 사무실이 있는 이 동네가 저 건물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저 건물이 완공된 뒤 디자인 효과를 절감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에 대해서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과 대구를 비교하는 것이 좀 우습지만 신 대표의 고향 대구의 디자인 실력은 어떤가?

▶대구의 관문이 확 바뀐 모습을 최근 봤다. 동대구역 광장이다. 그런데 볼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주제가 없다. 대구다움이 없는 것이다. 비교가 된다. 바로 옆 대구신세계는 느낌이 좋아보인다. 기업이 만들었으니까 들어가보고 싶은 기분이 나도록 디자인했다. 그런데 공공의 영역, 광장으로 나오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확 온다. 제대로 꾸밀 자신이 없으면 아예 나무를 심는게 낫다. 산업디자인적 가치를 잘 모르고 광장을 꾸며놨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도시 가치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나? 많은 프로젝트를 했을텐데 신 대표가 요즘 하는 특정 지역의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나?

▶서울 도시디자인 위원도 했고, 서울의 강남·성북구, 경기도의 부천·시흥, 전라남도 등의 공공디자인 위원도 했다. 해외의 한국문화원 설계에도 참여해 중국 베이징, 일본 오사카, 러시아 한국문화원 설계 총괄 또는 자문도 했다.

요즘은 전남 장성군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장성군 예를 빗대보면 경북의 지자체 관계자들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는데 자꾸만 해당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물에만 너무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장성군을 상징하는 대형 구조물을 지금 디자인 중인데 그 지역 특산물에 연동돼 그냥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나는 장성군 관계자들에게 얘기했다. 이제 곧 시공에 들어가는데 나는 이 구조물을 디자인할 때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디자인은 은유적이어야한다. 디자인이 직접적 메시지를 던지면 곧 흉물이 된다. 장성군 예를 들어보자. 장성군의 유두석 군수는 지금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그는 '옐로우 시티' 장성을 내세우면서 색깔 디자인을 통해 장성을 알리고 있다. 노랑꽃 잔치를 열었는데 전국적 주목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군수 한사람이 나선다고 그 고장 전체의 디자인 리모델링이 되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한다. 장성군수는 장성아카데미를 통해 공무원들은 물론, 군민들까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을 통해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디자인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동네가 실제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 디자인의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이 밑거름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대구경북이 디자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어야한다.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은 삼성 디자인 학교(Samsung Design Institute)를 갖고 있다. 대구가 새로운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대구도 이런 디자인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가져야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볼짜노에 가면 '볼짜노 프리 유니버시티'가 있다. 전세계에서 투자 자본을 모아와서 1997년 강소대학을 만들었다. 디자인을 기본으로 해 예술, 컴퓨터, 경제학과 경영학 등의 전공이 있는 5개 단과대학인데 불과 20년만에 전 세계 대학평가에서 상위 50위 내에 들어가는 대학이 됐다. 싱가포르 디자인 기술대학교도 디자인과 공학기술의 융합을 통해 아시아의 인재들을 모아 세계적 인재양성기관으로 발돋음했다.

대구경북도 이러한 디자인 인재양성기관을 하루 빨리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토양을 갖춰야 대구경북의 산업 공동화를 막을 수 있다.기존 대학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기존 대학의 타성적 태도로는 혁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인데, 디자인이라? 변화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구경북의 정치적 성향을 자꾸만 모든 영역에 접목시키면 안된다. 그러면 정말 정체된 곳이 된다. 대구경북의 리더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심어줄 인재양성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변화를 일궈낼 수 있다. 대구경북이 문화 수도는 되기 힘들지만 디자인 수도는 될 수 있다. 내가 서울시 디자인 프로젝트도 여러번 몸담아봤지만 서울도 몇몇 기업이 잘하는 것은 있지만 공공영역 전체에서 확실하게 서울이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대구경북의 제조업 기반이 생각보다 탄탄하다. 디자인을 키운다면 산업과 연계시킬 수 있다. 그동안 잠재력을 갖고 있었지만 새로운 모티브를 얻지 못했던 제조업에 디자인이 강력한 경쟁력을 입힐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사람같지만 밑바닥을 잘 살펴보면 요점은 '남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이다. 대구·경북이 디자인 인재 양성을 통해 '다른 생각' 키우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서울에서 활동중인 신 대표가 대구경북 디자인 산업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봤는가?

▶대구가 디자인박물관을 만든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디자인박물관을 만들면 디자인이 얼마나 우리 삶과 가까운지를 체감하게 되고 인재들의 각성을 일으킬 수 있다. 영국 런던, 독일 뮌헨에 가면 디자인박물관이 있다. 항상 인파로 붐빈다. 요즘은 해외의 디자인박물관들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디자인이 산업과 연계돼 큰 힘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7년간 독일에서 유학을 하면서, 그리고 20여년간 대학교수로서 살면서, 또 30여년간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많은 것을 수집했다. 소장품이 1천여 점에 이른다. 대구가 디자인박물관을 만든다면 내 소장품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투자유치가 땅 싸게 주고, 세금 깎아주는 것이었다면 4차산업혁명 시대 투자유치는 이제 달라져야한다. 대구경북이 미래 산업의 가치를 높여주는 디자인으로 무장해야한다. 디자인 인력을 몰고 오고, 디자인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면 대구·경북의 기존 산업이 달라지고 연관 산업의 투자유치가 좀 더 쉽게 이뤄질 것이다.

우리가 만든 모든 것은 언젠가는 낡고 소멸된다. 하지만 그것을 디자인한 생각은 영원하다. 우리는 영원한 생각을 키우는 작업을 서둘러 해야한다. 그 첫걸음이 디자인박물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