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가녀린 간호사 여운정 씨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에 출전해 완주하는 것이었다. 2년 전에는 그랬다. 올림픽코스(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여러 차례 정복한 운정 씨는 이제 킹코스(수영 3.8㎞,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에 도전하려 한다. 철인3종경기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휴식 없이 연이어 하는 경기로 강인한 체력과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도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완주를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철인3종경기를 즐기는 여운정 씨를 만나봤다.

◆ 수영, 사이클, 마라톤 등 여러 스포츠 즐길 수 있어
'작렬하는 태양 아래, 후끈한 아스팔트 위로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는다.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심장과 폐는 곧 터져버릴 듯 잔뜩 부풀어 올랐고 팽팽해진 팔과 다리 근육은 끊어질 듯 아프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남은 길은 또 얼마인가?'
그러나 운정 씨는 "철인3종경기는 그 어떤 종목보다 정직하다"고 평했다. "마라톤은 앞사람의 페이스를 따라가다 보면 레이스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철인3종경기는 수영·사이클·마라톤을 번갈아 가며 한다. 누구든 세 가지 중에서 더 잘하는 게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페이스만을 염두에 두고 인생처럼 계획을 세워서 해나가야 한다. 수영에서 조금 뒤졌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철인3종경기의 매력은 '다양성'이라고 했다.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수영, 사이클, 마라톤 모두 힘들지만 하고 나면 성취감이 크다. 자신감도 생긴다"면서 "아마추어인 만큼 즐길려고 한다. 즐기지 않으면 끝을 낼 수 없는 스포츠"라고 했다. 그러면서 철인3종경기를 할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힘듬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즐길 수 있는 배포, 견딜 있는 용기, 즉 '깡'이 필요하다"고 했다.
운정 씨는 "개성이 강한 종목을 하다 보면 그 종목 마니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느낀다. 바로 이런게 철인3종 경기의 매력인 것 같다"고 했다.

◆장애인이 수영하는 것 보고 결심
운정 씨는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공부도 웬만큼 했던 운정 씨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해 간호사가 됐다. 그동안 먹을 것 다 먹고 운동을 등한시 한 탓에 20대 초반에는 몸무게가 85kg이나 됐다.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할겸 운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헬스장을 둘러보다가 철인3종경기 배번(백넘버, 운동선수의 등 뒤에 붙이는 번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관장이 '관심 있으면 연습장으로 나와라'고 했다. 그게 2016년 여름이었다"고 술회했다.
회원들이 훈련하고 있는 수영장에 갔다. 물이 무서워 수영을 못했던 운정 씨는 수영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물꾸러미 바라만 봤다. 그때 한쪽 다리 장애가 있는 회원이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땅 위에서 걷기조차 힘든 장애 회원이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가는 자유로운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 모습에 반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이후 운정 씨는 수영을 보완하면 철인3종경기에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해 10월 울진대회에 참가신청을 덜컥 해버렸다. 수영은 물론 사이클, 마라톤까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운정 씨는 강훈에 돌입했다. 특히 수영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울진대회에서 강훈 덕분인지 5명(2명 중도 탈락)이 출전한 올림픽코스에서 2시간 57분 기록으로 우승했다. "선배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신나게 즐겁게 달렸다. 아마 기록을 의식했더라면 완주는 물론 기록도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감을 얻은 운정 씨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다. 2016년 가을 춘천마라톤에 출전해 4시간 15분 기록으로 완주했다. "이를 꽉 물고 뛰었다. 결승선을 통과하자 와락 눈물이 났다. 온몸의 뼈가 아프고, 급성관절염으로 물리치료를 받는 등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만 두고 싶었다. 그러나 문득 '안 아프게 철저히 준비해서 즐기면 될 것' 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10여 번 철인3종경기에 출전했다. 올해 5월 충남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 참가해 올림픽 코스(40대 전반 여자 부문)에서 2시간 43분을 기록해 3위를 차지했다. "수영에서 많이 뒤처졌는데 사이클에서 따라 잡았다"고 했다.
컷오프 당한 적도 있었다. 올해 7월에 열린 양산시장배 황산 전국철인3종대회 때 수영에서 시간제한으로 컷오프 됐다. "날씨가 너무 더워 슈트를 입지 않고 출전했다. 강을 거슬러올라갔는데 비가 온 후라 유속이 빨라 떠내려가는 등 제한 시간에 못들어와 실격됐다"고 했다.
운정 씨는 경기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힘이 남아 있으면 후회할 것 같아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한번은 힘을 다 쏟아 너무 힘들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못 먹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또 도전하고 싶어지는 게 철인3종경기 "라고 했다.
◆ "해외의료봉사 하고파"
운정 씨는 아직도 물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45분 걸렸던 1.5km 코스를 30분으로 줄였다. 수영은 1주일에 두 번 정도, 사이클은 클럽 회원들과 청도 팔조령과 헐티재를 넘는다. 마라톤은 수성못이나 신천 둔치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대회 때는 연습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경기 전에 앞서 특별한 징크스는 없다고 했다. 몸무게는 51, 51kg 정도 유지하려고 한다. "그 몸무게가 컨디션이 가장 좋다. 그 정도는 돼야 사이클 페달을 밟을 때 힘이 있고, 더 무거우면 마라톤할 때 힘들다"고 설명했다.
경기 후 발가락,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것 말고는 특별한 후유증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실로 터뜨리면 돼요. '영광의 상처'"라며 활짝 웃었다.
운정 씨는 올림픽 코스에서 2시간 30분 내에 들어오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기록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냥 즐기면서 하려 한다"고 말하면서도 "킹코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운정 씨에겐 꿈이 하나 더 있다. "기회가 되면 해외의료봉사를 하고 싶어요. 그땐 지금의 체력이 많이 도움이 되겠지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이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철인3종경기는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하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철인3종경기에는 올림픽코스(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비롯해 하프코스(수영 2㎞, 사이클 90㎞, 마라톤 21㎞), 철인코스(수영 3.8㎞,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 등이 있다. 초심자를 위해 수영 750m, 사이클 20㎞, 달리기 5㎞로 구성된 스프린트 코스도 있다. 특히 철인 코스는 3.8㎞를 헤엄치고, 사이클을 180.2㎞ 탄 뒤, 두 발로 마라톤 거리인 42.195㎞를 달려 226.195㎞를 17시간 안에 주파하면 '철인'(iron man)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흔히 말하는 철인3종경기란 보통 '아이언맨 코스'를 뜻하는데 일명 '킹코스'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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